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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 눈물바다 이룬 대추리 도두리 매향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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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중의소리 | 2007-04-08 20:48 | VIEW : 2,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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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떠나기 싫다. 김월순"
[르포] 눈물바다 이룬 대추리 도두리 매향제
배혜정 기자
한차례 비가 올 것처럼 흐린 하늘 아래 아득히 꿈처럼 보이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2003년 설치예술가 최평곤씨가 대추리 도두리를 지키라고 세운 문무인(文武人)상이 저 멀리 보였다. 예전엔 한없이 당당해 보이더니 이날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이나 한 듯 문무인상의 모습은 퍽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문무인상이 화형 당하는 거지. 대추리 도두리를 지키라고 세워놨는데 지키지 못했으니까 벌 받는거야.."
사람이 못한 일을 두고 대나무 작품 탓을 하려니 조금은 머쓱한 듯 외지에서 온 한 젊은 참가자는 나즈막히 읊조렸다.
△7일 오후 대추리 도두리 매향제가 열렸다. 황새울 들판을 지키던 문무인상도 태워졌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7일 대추리 도두리 매향제는 문무인상을 태우는 것부터 시작됐다. 미술가 김성수 씨는 '주민들의 한을 태워 날려보낸다'는 의미로 문무인상을 태운다고 말했다.
문무인상 앞에는 이미 대추리 주민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김월순 할머니는 지킴이며 취재를 온 기자 할 것 없이 모두 끌어안으며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고 등을 두드렸다. 송화리로 이사를 한 뒤 일주일만에 다시 찾은 고향땅의 흙냄새가 반가운 듯 김 할머니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대추리 도두리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다시 만나리'가 쓰인 천을 휘감은 문무인상에 휘발유가 뿌려지고 마지막 소망을 담은 소원지가 매달리기 시작하자 김 할머니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아이고.."
주민들을 위로하는 건 언제나 문정현 신부의 몫이다. 김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은 문 신부는 같이 고개를 파묻고 눈시울을 붉혔다. 송재국 할아버지는 "괜히 처량하네"라며 목장갑 낀 손으로 눈가를 쓱 닦았고, 정태화 전 대추리 노인회장은 뒷짐을 진 채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눈물을 흘리는 대추리 김월순 할머니와 위로하는 문정현 신부.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문무인상 앞에 고사상이 차려지고 황새울 들판에 작별을 고하는 행사가 시작됐다.
"유세차 정해년 이월 스무날...논에 물대고 밭에 씨뿌리고 할 때 활새울 문무인상을 태워버리니...국가폭력에 맞서 이 마을 이 땅을 지키는 일이 한반도를 지키는 일이었으나 힘이 모자라 잠시 우리의 꿈을 묻으려 하니..천지신명이시여, 생명을 키울 수 없는 땅, 평화를 말할 수 없는 땅, 군대의 노략질에 죽어갈 생명들을 궁휼히 여기소서...다시 돌아올 그 때 까지만 이 땅을 지켜주소서..우리 반드시 돌아오리니, 이 땅에서 늙어 죽고 싶은 늙은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리니..천지신명이시여. 우리의 통곡을 기억하소서."
고사문을 읽는 주민이나 그것을 듣는 주민들이나 괴롭긴 마찬가지. 눈물 속에 주민들, 지킴이들이 차례로 고사상에 절을 하며 황새울 들판에 작별을 고했다. 주민들이 문무인상 밑둥에 불을 부치자 삽시간에 불기둥이 하늘높이 치솟았다. 흐느낌이 커지자 풍물소리도 덩달아 함께 커진다. 주민도 울고 지킴이도 울고 심지어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울던 황새울 들녘에서 만원짜리 뭉치를 입에 가득 문 돼지머리만 '허허' 인심좋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황새울 들판에 작별을 고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사상 앞에서 고사문을 읽는 주민.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불타는 문무인상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행렬ⓒ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황새울아 다시보자'돛을 단 꽃배를 어깨에 들쳐맨 6명의 장정들 뒤로 주민들과 참가자들이 긴 행렬을 이뤘고, 자동차 행렬이 그 뒤를 따랐다. 긴 행렬은 중간중간 끊기기도 했다. 마을을 떠나는 것이 못내 한스러운 주민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차례씩 통곡을 했기 때문. 김순득 할머니는 "나는 예서 못나간다"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1994년 할아버지를 잃고 홀로 살고 있는 김순득 할머니는 매년 땅 2200평을 일궈 쌀 50가마를 만들어 낸 '슈퍼할머니'였다. "손주녀석 같다"는 이유로 2년 전 겨울 촛불행사 취재를 기다리던 기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 따뜻한 아랫목을 내주기도 했던 김순득 할머니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왔다.
"대추리 떠나기 싫다. 김월순"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이미 깊이 1m 50cm 정도의 직사각형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주민들의 소중한 물건을 담은 장독대와 소원을 담은 매향나무 판을 넣을 구덩이였다. "좀 더 깊게 파야되는게 아니냐"며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씨가 혀를 찼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씨도 혹시나 미군기지가 들어설 때 묻어놓은 물건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운 듯 구덩이 속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주민들은 금방 잘라온 매향나무 판에 페인트로 소원을 적기 시작했다. 문정현 신부에 안겨 울던 김월순 할머니는 역시나 향나무 판에 '대추리 떠나기 싫다. 김월순'이라고 적고 훌쩍훌쩍 울었고, 송재국 할아버지는 "황새울 들판이여 영원하시오. 우리 모두는 꼭 돌아오리오. 사랑한다. 송재국'이라고 적어넣었다. 대추리 노인회장 방승률 할아버지는 '미국놈 모라내고 후손에게 평화의 땅 물려주자. 사랑하는 정든 고향 언제 찾으리. 고향이여 영원하라'고 또박또박 적어내려갔다. 모두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과 염원을 담았다.
△매향나무 판에 소원을 적고 있는 주민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대추리 떠나기 싫다. 김월순"ⓒ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대추리여 영원하라. 이순금"ⓒ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신종원 이장이 구덩이로 들어가 주민들이 그동안 사용했던 도장들을 받아 장독에 넣었다. 대추리에서 태어나 근 40여년을 살아온 신 이장의 소원은 늘 한결같았다. '주민들이 고향땅에서 늘 행복하게 농사짓고 사는 것'이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늘 투쟁의 선봉에 섰었다. 그러나 자신의 평생의 염원을 이루지 못한 신 이장은 주민들의 물건을 채 다 받아넣지 못하고 결국 구덩이 속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보다못한 주민 몇몇이 들어가 나머지 물건과 매향나무 판을 받아 차곡차곡 쌓았다. 천주교 신자인 이호순 할머니는 장독대에 넣을 물건으로 마리아 상과 아기 천사상을 비닐주머니에 담아왔다. "마리아 상이 대추리를 영원히 지켜줄 수 있을 것"이란다. 이 할머니의 물건도 장독대에 넣어졌고 '내가 못지킨 것 우리 후손이 지켜다오'라고 적은 매향나무판도 한 구성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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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다"ⓒ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문정현 신부가 앞으로 나와 작별의 인사를 고하는 글을 낭독했다. "우리는 지금 죽지만 기어코 살아 돌아올 것이다.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말고 민들레 홀씨가 되자."
문 신부의 인사에 방승률 노인회장은 "오늘이면 이 땅에서 대추리 고향을 떠나게 된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피멍들어 쫒겨나지만 이후에도 우리 고향땅을 찾기 위한 노력을 다 할 것이다. 평화의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대추리 도두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통곡을 집어삼키듯 꽃배가 대나무 마디 툭툭 터지는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한도 함께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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