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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움 안하고 추수만 하면 얼마나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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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중의소리 | 2006-09-20 09:40 | VIEW : 2,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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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서 콤바인으로 첫 수확을 거두는 중 ⓒ민중의소리
"싸움 안하고 추수만 하면 얼마나 좋아"
강제철거 뒤에 찾아 온 대추리의 벼베기
서정환 기자
추석을 지척에 둔 15일.
바로 이틀 전에 주택 강제철거에 의한 마을 파괴가 자행되었지만, 평택 대추리에서는 올해 첫 벼베기가 이루어졌다.
이날 추수한 작목은 조생종 흑향미. 주식으로 쓰이는 백미나 다른 흑미보다 생육이 빠른 것이라 추수가 한달 정도 이르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팽성대책위원회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이날 1500평에서 수확한 흑향미는 80kg 용량으로 19~20가마 정도의 소출이 예상된다.
미질이 뛰어난 논에서 생산된 이 흑향미는 4kg 한 봉지에 약 1만원 정도로, 다음주 월요일 정도면 일반 백미와 함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팽성주민대책위 김택균 사무국장은 "싸움 좀 안하고 추수만하고 살면 좀 좋겠냐"며 "서른 가마도 가뿐하게 낼 수 있는데 국방부가 물을 대거나 농사를 짓게 놔두지 않아서 많아봐야 스무 가마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추수가 이루어진 땅은 국방부에 넘어가 버린 곳.
그러나 콤바인에 쓸려가는 벼들을 바라보며 대추리 주민 김종오(70세)씨의 얼굴에 웃음이 배어 나왔다.
국방부가 농지를 강제수용하기 전, 몇 만평씩 수확하던 때에 비하면 그야말로 감질맛 나는 첫 수확이다. 그러나 적으면 적은대로, 추석이 지나면서 대추리에도 본격적인 벼베기 때가 온다.
이후에는 평택미군기지확장을 저지시키려는 주민들의 구호가 "내년에도 농사짓자"로 바뀔지 관심이 모아진다.
△콤바인으로 탈곡까지 한 이삭을 큰 자루에 담고 있다 ⓒ민중의소리
△벼를 거두는 장면을 바라보는 농심 ⓒ민중의소리
"일을 하면 걱정, 근심도 잊는게 농민이예요"
[인터뷰] 대추리 주민 송재국 씨
서정환 기자
"배추 밭에 물 좀 주러 갈려구 그래요"
주택 강제철거로 대추리 마을 곳곳이 포격을 맞은 듯 파괴된 13일 늦은 오후.
마을 입구에 있어 동네 얼굴과 같은 집에 사는 송재국(69세)씨는 우악스러웠던 하루가 피곤하지도 않은지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대추리 주민 송재국 씨 ⓒ민중의소리
"이런 때일수록 농삿일을 자주해야 합니다. 농민이니까요. 일을 하고 있으면 몸과 마음의 아픔들을 다 잊을 수 있어요.
도시 사람들도 새 직장을 얻을 때 까지 잠깐은 괴롭다고 하죠? 땅만 빼앗기면 평생 실직자 마냥 일 거리 없는 농민들 맘을 남들은 잘 몰라요"
그렇게 슬프나 기쁘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평생 농사만 지어온 송 씨가 어디서건 정치경제학을 배웠을리 만무하지만 그의 몸은 그만의 이론을 담고 있었다.
"농민들이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지 '땅 값'을 먹고 사나요? 땅 값이 십만원이든 천만원이든 땅은 땅이고 거기서 나는 것도 똑같아요.
땅 값만 가지고 나가면 그거 하루하루 까먹는것 밖에 더 되겠어요? 그치만 이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한은 나도 남은 여생 내 힘으로 먹고 살고, 내 자식ㆍ손주들하고 몇 대가 지나도 먹을 것이 나온다는 말이예요"
그것만으로도 소중하지만 송 씨에게 땅은 그저 먹고 살 것을 내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땅은 그의 가족을 지키는 끈이고, 살면서 언제 닥칠지 모를 곤란의 마지막 '비빌 언덕'이다.
"내 한테 재산이 10억 있다 치면, 자식이 '아버님 나 사업할랑께 5억만 주세요'하면 안줄 부모 없잖아요. 물론 내가 자식 농사 짓게는 안했으니 그거 잘되면 더 바랠 것도 없죠. 그래도 세상이 어디 그래요. 그거 홀랑 까먹고 와서 '아버지 3억만', '아버지 2억 마저' 하면 부모는 오히려 더 안줄수 없는게 부모 맘이예요.
그렇게 하면 자식도 거지되고, 부모도 거지되고 부자간에 의까지 상해 버리는게 돈이예요. 여기서 나간 사람들도 그런 사람 있어요.
헌데, 이렇게 농사짓고 살면 내가 자식에게 큰 도움은 못돼도 쌀 몇 가마는 보태주고, 콩이나 김장배추도 보태 줄수 있잖아요? 그렇게 하면 저들도 (부모가 해 주는 것이)영 없이 사는 것 보다 낳을 테고 나도 자식들 한테 애비가 뭣이라도 해준다고 세울 수 있을테고 혹시나 이놈이 힘들어서 찾아 오면 밥 걱정은 없이 지내잖아요.
지금 제가 10년을 산다하면, 앞으로 5년은 이렇게 농사짓고 살아도 남은 5년은 구들장에서 허리 붙잡고 살다가 죽어요. 솔직히 그러지 않겠어요?
그래도 이 땅은 남아서 자손들 먹고 살면 그게 음덕보다 낫지 않그래요?"
송 씨는 대추분교 이웃에 산다. 그의 집 대문과 대추분교 정문은 서로 코를 맞대고 있다.
"접때(5월 4일) 그놈들이 하는 걸 보세요. 학교를 부수면서 나무랑 놀이터 까지 다 부셔 놨잖아요. 제가 그 사람들 한테 그랬어요. 학교만 부수고, 나무는 그냥 두면 남은 사람들이 언제까지 살든지 그 나무 덕 좀 보고 살지 않겠냐고. 그런데 자기들은 쓰일데도 없이 나무를 뽑아 내버린 거예요. 운동장 까지 후벼 파 놓고. 그건 뭐냐, 우리 주민들의 마음을 뽑아 버리자는 거예요"
13일도 마찬가지다. 국방부는 딱 흉할 정도로만 빈집들을 철거했다.
△송재국 씨가 주택 강제철거에 맞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민중의소리
"그래도 많이 지켰잖아요. 저번, 학교 무너졌을 때랑 비교해서 보면 그래도 안심이 많이 돼요. 오며 가며 저 무너진 집들 보면, 또 밤중에 보면 맘이 더 안됐겠지만은 그래도 우리 주민들의 마음은 안무너졌어요. 농사 짓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한 땅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니까 무너질 수가 없어요"
일을 거들어 줄 친구가 오자 송씨는 경운기를 뒤로 뺐다.
"촛불 집회 하기 전에 물 다주고 올려면 얼른 다녀와야 해요. 내가 말한 것은 그게 다 내 맘이고 우리 주민들의 맘이니깐 그렇게 알아 주시고 신문에 잘 좀 내 주세요"
그의 앞 집은 국방부와 경찰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철거하려던 곳이었다. 지킴이 2명이 지붕을 붙잡고 있던 그 밑에서 송씨는 농민가를 부르고 '팽성은 우리 땅'을 부르며 포크레인 앞을 막아섰다.
끝내 그들을 돌려세운 그 길을 따라 송씨는 넘치지 않게 웃으며 배추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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