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이하 평택 범대위)가 결성됐다. 평택 범대위 결성으로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이 매향리 투쟁이나 부안 투쟁 승리의 뒤를 잇는 국민적 투쟁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하지만 평택 문제는 여전히 평택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로만 인식되었던 게 사실. 이에 <민중의소리>에서는 내달 5일 평택에서 열리는 평택 범대위 출범식 및 1차 범국대회에 앞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갖는 의미를 비롯해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용산기지이전협정과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협정안이 지난 해 말 국회를 통과하면서 평택은 전체 면적의 1/20에 해당하는 718만평(349만평 증가)의 미군기지가 들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평생 농사만 짓던 주민들의 생존터 사수 의지가 강해 기지확장이 예정대로 진행될 지는 두고 볼 일. 그렇다면 한미 양국은 왜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용산미군기지와 미 2사단을 평택으로 집결시키려 할까.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은 전세계 미군 재배치, 성격 변화의 일환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환에서부터 추적해야 한다.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한 서재정(코넬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미국의 군사전략이 9.11테러를 당한 부시 행정부에 들어 일대 전환을 맞았다고 분석한다.
클린턴 정부는 안보 위협 지역을 중동과 한반도로 구체화하고 양대 전장에서 동시에 승리를 거둔다(win-win)는 '양대전쟁전략'을 채택했으나, 부시 정부는 기존 양대전쟁전략을 계승하되 적국의 점령과 정권교체까지 목표로 하는 '신 롤백 정책'을 채택, 신속하게 군사력을 이동해 조기에 전쟁을 끝낸다는 전술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신 롤백 정책은 2001년 4개년국방검토(QDR)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는 적국이 공격하지 않더라도 사전봉쇄 차원에서 선제공격을 허용한다. 또한 부시 정부는 4개년국방검토를 이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2002년 '방어계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 '을 채택, 기존 양대전쟁 전략을 ‘1-4-2-1 계획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여기서 1은 미국 본토의 완전 방어, 4는 유럽, 동북아, 동아시아 도서, 중동/서남아 지역에서의 전진억제, 2는 앞의 4개 지역 중 2곳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양 지역 모두 신속한 승리, 1은 1개 전장에서의 결정적 승리를 의미한다.
미국은 ‘1-4-2-1 전략’을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군사변환과 미군기지 재조정 작업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전세계 미군은 첨단무기+신작전+신조직 등 삼위일체의 21세기 최첨단군으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전쟁도 적과의 대치선을 두고 싸우는 개념에서 벗어나 적의 지휘부와 지휘통제 체제를 우선적으로 공격,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전방위 우위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육군은 장갑차와 같은 중부장과 경보병을 결합한 스트라이커 부대와 같이 전투력과 신속성을 높이고 다양한 환경에서도 생존, 유지성이 높은 목적군으로 재편하고 있다. 또 공군은 음속의 8배에 달하는 폭격기 개발을 추진, 전 세계 어느 곳이든 2시간 안에 치명적 폭격을 가할 계획이다. 해군 역시 적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고 항해 속도를 향상시킨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개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군인 수’는 줄이되, 군대의 이동, 작전 속도와 기민성, 조합성 등을 향상시켜 ‘군사력’을 강화한 것이다.
주한미군 재배치 및 기지조정은 이와 같은 미국의 전략변화와 미군 재배치 및 기지조정 작업의 일환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2003년 11월 25일 유럽과 아시아 등 전세계 미군의 재배치를 본격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이 남한에 F-117 스텔스기 배치, F-15E 전폭기 20여대를 동원한 한반도 지형적응훈련, 인공위성으로 유도되는 JDAM(합동직격탄) 투하 훈련 등 첨단무기를 동원한 훈련을 하면서 '주한미군을 감축해도 안보에는 지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은 한국 방어를 점차 한국군에 이양시키고 가볍고 강해진 주한미군을 지역군으로 전환, 그 역할 범위를 한반도에 한정시키지 않고 '잠재적인 적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이미 미국은 광주, 군산, 평택, 오산 등 이른바 '서해안 MD 벨트'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 명백히 중국을 겨냥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미군 재배치가 완료될 시점이면 평택은 ‘미래전투시스템’으로 무장된 미 2사단이 머물게 될 것이고,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한국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도 주한미군을 세계 어느 곳이든 내보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볼 때, 항구와 공항, 그리고 철도, 고속도로 등 각종 교통시설을 갖춘 평택은 미국의 동북아 군사 전략을 수행하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인 셈이다.
미국의 각본대로 진행되는 주한미군 재배치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추적해 보면, 현재 진행 중인 주한미군 재배치는 철저하게 미국의 각본대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순리상 주한미군의 역할 변동이 먼저 논의되고 그에 맞는 미군재배치가 이뤄져야 하지만 한미 양국은 이를 반대로 하고 있다는 게 특이할 뿐이다.
이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애초 미국은 2003년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를 시작할 때, 그 명칭에 맞게 전반적인 동맹 재조정을 논의하면서 각론에서 기지 이전을 협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90년 대부터 꼬여 있는 용산기지 이전 문제만도 논의할 양이 많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정서상 주한미군 역할 변동은 민감한 사항이므로 기지이전을 합의하고 난 후에 논의하자'라고 미국을 설득했던 것.
따라서, 작년 말까지 기지이전 논의가 마무리된 만큼, 이제는 지난 3일 열린 1차 한미동맹 안보정책구상(SPI)를 시작으로 한미 양국은 한미연합지휘체계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등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및 한미동맹의 성격전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고 동북아를 긴장시키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동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제기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대세 아니겠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 결과는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부, 미국 요구는 수용하고 자국민 요구는 묵살...국민적 투쟁으로 한미 동시 압박해야
기지확장과 관련, 결과적으로 미국의 일방성을 수용한 정부가 그 일방성을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되풀이 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돼 온 기지 확장 이전 과정을 보면 먼저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이 변화하면서 주한미군의 성격 및 재배치 수위가 결정되고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주한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총집결시키겠다는 계획을 결정할 때도 미국과 먼저 합의하고 정부와 국회를 다 거친 뒤, 땅 주인인 우리 주민들에게는 맨 마지막으로, 그것도 일방적으로 통보한 바 있다"
이는 평택 주민들이 지난 달 국방부가 발표한 주민 이주대책에 반발해 발표한 성명 내용 중 일부다. 주민들은 당사자인 자신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지확장을 추진하는 데 분노한 것이다.
심각한 것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와 재배치 문제가 걸린 평택미군기지확장 문제가 아직까지 현지 주민들만의 '생존권 투쟁'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 투쟁이 매향리 투쟁, 부안 투쟁처럼 미국과 정부와 맞서 승리적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확고한 투쟁 의지와 더불어 시민사회단체들이 실질 투쟁에 결합해 줌으로써 외연을 확대, 미국과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