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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문정현 신부의 단식과 월드컵 -노신부의 애절한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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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6-15 15:18 | VIEW : 3,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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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의 단식과 월드컵
[기고] 노신부의 애절한 기도
2006년 06월 14일 (수)
김종철 / 언론인(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신문 편집부위원장·논설위원,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6월13일 오후 6시께, 청와대 정문 앞 분수대에서 50여미터쯤 떨어진 청운동 사무소 앞 평상에 한 노인이 누워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전면 재협상을 위한 문정현 신부 단식기도'라고 쓰인 하얀 헝겊 아래.
거기서 2킬로 남짓의 시청앞 광장에서는 앞으로 4시간 뒤에 시작될 월드컵 축구 한국 대 토고의 경기를 응원하려는 '붉은 악마'들이 연예인들의 노래와 춤에 장단을 맞추며 신명을 내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광장과 극장과 술집의 대형 텔레비전 앞에 수백만의 '붉은 한국인'들이 진을 칠 것이다.
단식 여드레째인 문 신부의 얼굴은 하얀 수염과 대조적으로 검은 색이 짙어져 있다. 오래 전부터 협심증을 안고 사는 그는 때 맞추어 약을 안 들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녀 한 분이 문 신부의 머리맡에 앉아 쉼 없이 얼굴과 가슴에 지압을 하고 있다. 지금 66살인 문 신부의 누이동생이자 문규현 신부의 누님인 문현옥 수녀이다.
문 신부는 이미 체력이 달리는지 누운 자리 옆에 '묵언'이라는 두 글자를 써놓았다. 바로 앞자리에 대추리와 전북에서 온듯한 젊은 남녀들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고, 한 청년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문 신부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려는듯, 그는 나지막하지만 온 몸의 기를 모은 소리를 '신부님'에게 전한다.
문정현 신부는 누구인가? 요즘 그 유명한 평택 대추리 사태를 텔레비전에서 얼핏 본 이들은 '웬 괴팍한 노신부가 저렇게 극렬하게 농민들의 투쟁에 앞장을 설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니 저 노인네 부안 방폐장 유치 반대 때도 군민들 앞에 서서 갖은 극성을 부리던 신부 아냐? 신부가 하느님 잘 모시고 신자들 사목이나 열심히 하지 날마다 반정부 싸움질이나 하다니!'
문 신부를 잘 아는 사람들, 특히 천주교의 사제들과 교우들은 젊은 시절의 그는 모범적인 신부, 시체말로 '범생이'였다고 회고한다. 그럼 무엇이 그를 오늘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투사로 만들었을까? 그 내력은 지금부터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목격자이므로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 이제는 현재진행형의 역사가 된 동아일보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왔고, 그것은 긴급조치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박정희 정권과의 전면전으로 발전했다. 그때의 동아일보 격려광고는 나이 든 분들이라면 익히 기억할 것이다. 그 싸움을 가장 열심히 격려하고 지원한 이들이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직자들과 신자들, 문인들이었다. 특히 천주교는 조직적으로 유신정권에 맞서기 위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조직했다. 이 모임은 지금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문정현 신부는 그 무렵부터 투사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1975년 4월말 대법원이 '인혁당 사건' 피고인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튿날 법무부가 바로 사형을 집행하던 날 문 신부는 서울 응암동 세거리에선가 그들의 유해를 실은 버스를 가로막고 몸싸움을 하다 몰매를 당하고 차에 치어 한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얼마전 인혁당 사건은 정보기관이 고문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복권이 되었다.)
그해 초여름 나는 문 신부를 문병하러 전주 파티마병원으로 갔다. 그는 목발을 짚을 수도 없이 큰 상처를 입어서 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병상 맡을 지키던 문 신부의 가족 한 분이 이런 일화를 전했다.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려는데 문 신부가 '인혁당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박정희를 처단하자'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집도하던 의사들이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가 한참만에 돌아왔다니까요."
그 뒤 30여년이 넘도록 문 신부는 옳다고 여기는 일 앞에서는 한 몸의 편안함을 돌보지 않았다. 내가 알기에 그는 80년대인가 한동안 미국의 어느 신학교에서 공부에 열중한 것 말고는 내내 가난하고 고난을 겪는 이웃의 곁을 지켜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부안과 대추리이다.
부안의 대다수 군민들이 그렇게도 반대하던 '핵쓰레기 처리장' 문제는 그 뒤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필사적인 경쟁을 벌인 끝에 한 도시로 결정이 났으니 씁쓸한 웃음이 날 뿐이다. 한 나라 안에서 이렇게도 생각이 다를 수가 하는 생각과 함께.
부안에 이어 운명처럼 대추리가 문 신부를 찾아온 것일까? 그는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려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결정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을 것이며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도 장애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주민등록을 아예 그리로 옮기고 대추리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문 신부와 눈으로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 아홉시, 지상파 텔레비전은 이미 월드컵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이 4년 전처럼 기적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라므로 토고에 한 골을 주었을 때는 탄식을 했고, 이천수 선수가 멋진 프리킥을 성공시켰을 때는 손뼉을 쳤다.
그러는 중에 번개처럼 청와대 맞은 편에 누워 있는 문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부님이 이렇게 안 하셔도 좋을 세상이 언제나 올까요?" 내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자 동생수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 앞에 가서나 그런 세상 볼까요?" 다시 생각해보니 섬칫했다. '천성산 도롱뇽' 문제로 목숨 건 단식을 하던 지율 스님 일이 떠올랐다. '문 신부님의 고집도 그에 못지 않을 텐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문 신부 단식 아흐레째이다. 아침에 텔레비전을 켰더니 세상은 온통 월드컵 승리뿐이었다. 거기에는 신명나고 눈물겨운 그림들도 많았다. 거의 온 국민이 자기나라 대표들을 위해 저렇게 많이 거리에 나오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일사불란하게 응원하는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독일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붉은 셔츠를 입고 열광하는 동포들의 표정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북한에서까지 월드컵 중계방송을 볼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한때나마 민족이 통일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어떤 신문에도 방송에도 문 신부 단식 아흐레째 기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몇 신문이 "어제가 미군 탱크에 깔려 숨진 미선이와 효순이의 4주기인데 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렸다"고 지적하기는 했다.
나는 여기서 월드컵 열풍을 타고 장삿속을 채우려는 방송이나 신문의 태도를 주제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서른 해가 넘도록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종교인이자 한 국민이 목숨을 걸고 대통령과 대중에게 전하려는 말이 있다면 날마다 기사 한꼭지쯤은 내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는가?
정부나 언론의 냉담함과는 달리 문 신부의 단식 현장이 외롭지는 않았다. 대추리 주민들과 천주교의 '교형자매들', 그의 재야운동 동지들, 시민단체 회원들, 몇몇 정치인들이 그를 찾아와 걱정하고 위로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박순희 대표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변연식 공동대표가 부근에서 동조단식을 하고 있었다.
문정현 신부는 1987년 대통령선거때부터 '그중 낫다'고 판단한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이 된 사람이 옳지 않은 정책을 편다고 판단하면 가차없이 비판하고 나섰다.
문 신부가 미군기지 확장 이전을 전면 재협상하자고 주장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하려는 사회가 지녀야 할 민주적 자세이다. 그것은 반대파의 견해를 귀담아 듣는 데서 출발한다. 나는 정부 당국자와 언론이 문 신부가 대변하는 '대추리의 소리'를 진지하게 들으려고 노력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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