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 [르포] 야금야금 늘어가는 철조망..."군홧발에 짓밟힌 곳은 새싹도 안 난다" |
|
◆ 출처 : 민중의소리 | 2006-05-27 21:29 | VIEW : 1,852 |
| |
 |
| | 사진 : △ 민가에서 불과 100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깊이 2미터, 폭 10미터의 구덩이를 양쪽으로 파고 12중 이상으로 친 철조망 뒤로 미군기지 레이돔이 보인다. 철책은 이렇게 세 겹으로 마을을 포위하고 있다. 전쟁포로수용소도 이렇게 겹겹이 철책을 치지는 않을 것 |
|
대추리가 포로수용소인가?
[르포] 야금야금 늘어가는 철조망..."군홧발에 짓밟힌 곳은 새싹도 안 난다"
사제단
대추리가 포로수용소인가?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마태 26, 52)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변 평야는 농민들의 손길로 분주합니다.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는가 하면 경운기와 트랙터로 써레질을 합니다. 일찍 모내기를 끝낸 논의 벼들은 초록으로 짙어가고 있습니다.
<국책과 공권력에 대한 성찰과 참회를 위한 단식기도회>의 미사에 참여하러 가는 길, 철책 안에 갇혀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대추리 주민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광화문에 내리자, 거센 빗줄기가 바짓가랑이를 적시기 시작합니다. 지난 22일(월) 오후 3시 천막 안에 빼곡이 앉은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들, 우산을 들고 밖에서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까지 하늘과 땅을 생명과 평화의 빛으로 이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 모읍니다.
삭발단식 중인 이영선 신부의 강론이 쩌렁쩌렁 울립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광주 5.18을 겪었습니다. 그 참혹한 진실이 국가의 인정을 받기까지는 1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평택의 진실 또한 은폐되고 있습니다. 내 자식이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자동으로 파병되어 총알받이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직도 대다수 국민이 잘 모릅니다.
미군기지 재배치는 단지 대추리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전쟁의 불씨를 대물림하는 일입니다. 평화는 군대나 경찰의 폭력 등 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고 지속됩니다. 평택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갑시다."
광화문에서 미사를 마친 뒤 평택으로 향합니다. 폭우로 고속도로 노면에 고인 물이 튀어 올라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습니다.
불심검문은 엄연히 불법임에도 네 번의 검문을 거쳐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들은 마을 입구에 깊이 2미터, 너비 10미터의 구덩이를 파고 보기에도 끔찍한 원형 철조망을 9~10겹으로 설치했습니다. 마치 적을 포위하듯 철조망이 마을을 포위하는 양상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합니다.
22일(월) 저녁 7시 30분 수원교구 팽성본당 대추리 공소에서 진행된 촛불시위 장소에 삭발한 신부가 들어가자 격려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앞자리에 앉아 뒷사람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벽쪽으로 머리를 돌린 두 할머니는 두 손을 번갈아 올리며 눈물을 닦습니다. 위로의 말을 건네려다 그만 뜨거운 성수를 흘리고 마는….
문정현 신부의 여는 말과 평택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삭발한 신부의 격려사에 이어 주민 발언이 이어집니다. 송씨 할아버지의 발언이 정곡을 찌릅니다.
"국방부는 져야 이기는 싸움이고 이기면 지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져도 이기는 싸움이고 이기면 이기는 싸움입니다. 어느 때라도 평택 미군재배치의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국방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을 군대까지 투입해서 밀어붙이기식으로 했다는 진실이 알려지면 국방부는 이겼어도 지는 싸움을 한 것이고, 우리는 졌어도 주민들의 투쟁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송씨 할아버지의 날카로운 지적이 계속 이어집니다.
"보호해야 할 군사시설도 없는데 군대를 투입한 것은 분명 법에도 어긋납니다. 법을 따지지 않아도 일의 준비와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우리는 농부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볍씨를 소독물에 담그고 흙을 채로 쳐서 준비하고 못자리에서 기른 뒤 모를 심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처럼 농사에도 일의 순서가 있듯이 정부가 하는 일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농사처럼 순서가 잘못됐으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국방을 위해 이래저래 땅이 필요하니, 주민들이 협조했으면 합니다'라고 사전에 주민을 설득하고 대책을 수립하며 보상을 의논해야 하는데도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주민들에게 협조하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이것이 국가의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슬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어깨가 예전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향과 집을 지키려는 희망의 촛불은 여전히 환합니다.
농부를 전쟁포로처럼 수용하는 정부, 어느 나라 정부인가
23일(화) 새벽 5시 40분, 물꼬를 보러 가는 농부처럼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민가에서 채 3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부터 붉은 황토가 모습을 드러낸 구덩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엔 콘크리트 수로를 절단하고 깊이 2미터, 폭 10미터 가량으로 판 구덩이 안에 원형 철조망이 세 겹으로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 뒤편 군인초소 앞에도 흙을 쌓아올린 구덩이가 평야의 황폐함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본정리로 통하는 도로를 30미터 가량 절단했습니다. 가운데 10미터 지점만 남겨둔 채 깊이 2미터, 너비 10미터의 구덩이를 양쪽에 팠습니다. 마을 바깥쪽에 3중, 물구덩이 속에 3중, 중간 지점에 3중, 마을 안쪽 물구덩이에 3중, 마을 안쪽에 2중으로 모두 10중이 넘는 철조망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최하 5중에서 10중 혹은 15중의 철조망을 쳐 마을을 세 겹으로 포위하고 있는 꼴입니다.
대한민국 군부대 중 이렇게 많은 철조망을 친 부대가 또 있을까요? 자국 군인의 신변보호를 가장 우선하는 미군부대도 이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들판은 민간인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포로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철조망으로 가둬놓은 수용소처럼 보였습니다. 더욱이 지금 황새울에서는 200여 명의 주민을 상대로 만 명에 가까운 군인과 경찰이 보초를 서는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부를 어찌 대한민국 정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내 고향이 이렇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솟구치는 분노가 목을 조여오는 듯했습니다. 먼발치에서 한 늙은 농부가 삽을 들고 논둑을 걸어갑니다.
"저 국방부 놈들이 사람이여?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철조망에 가두는 거여. 평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농사만 짓고 살아왔는디, 쌀농사 지어서 국민들 먹여 살린 것밖에 없는디 그것이 죄란 말여? 밤이고 낮이고 전경들과 군인들이 지키더니 오늘은 없네. 참여정부 좋아하네. 군인 참여시키는 정부지 뭐. 그동안 숫제 안 나왔어. 이렇게 파헤쳐 놓고 논에 군홧발이 들어와 있는디, 나오면 너무 속상해서 안 나왔어."
전경들과 군인들의 군홧발로 다져진 논을 삽으로 파서 흙덩이를 쪼개 볍씨를 찾던 늙은 농부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침을 뱉어가며 말을 잇습니다.
"이렇게 볍씨가 싹이 텄어도 군홧발에 돌덩이처럼 다져진 땅을 어떻게 뚫고 나올 수 있겠어. 저기는 반 뼘이나 자랐는데도 이곳은 아직 싹이 땅 속에 갇혀 있어서 속이 터진단 게."
"저 미군부대 안이 우리 집이었어. 이곳은 원래 갯벌이여, 저기 동산이 포구였지. 새우잡이 배를 저기다 대었잖여. 그런 곳을 개간해서 경기도에서 제일 좋은 논을 만들어 놓았는디…. 이곳은 다른 지역이 가뭄이 들어 양수기로 물을 뿜어 올릴 때도 물이 넘쳐 물을 빼면서 농사를 짓던 곳인디. 쌀도 이천보다 더 좋고 수확도 더 많았어."
뒷짐을 진 두 손에 삽을 들고서 굽은 허리를 펴고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우리 고향이 이곳이라면 우리 아버지의 뒷모습일 텐데'하는 생각이 미치자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왜 정부는 농민과 시민을 적처럼 대하는 것일까. 일본군이 점령한 자리를 미군이 차지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 아닌가. 10중․15중의 철책과 구덩이, 마을을 세 겹으로 포위한 강제수용작전은 또 무엇인가. 국민의 땅과 재산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정부가 착한 농부들을 전쟁포로처럼 수용하고 있으니….
내가 낸 세금으로 저렇게 구덩이를 파고 10중, 15중의 철조망을 세 겹으로 쳐 농민들을 포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2006년05월27일 ⓒ민중의 소리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