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 80년 광주, 그리고 2006년 평택 |
|
◆ 출처 : 오마이뉴스 | 2006-05-20 20:58 | VIEW : 1,760 |
| |
 |
| | 사진 : ▲ 대추분교가 대형포크레인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자 할머니가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 땅만 보고 살아온 죄밖에 없는 할머니를 누가 통곡하게 만드는가? |
|
80년 광주, 그리고 2006년 평택
[주장] 광주 영령들은 지금의 평택을 어떻게 말할까요
최종수(tkfkdtn) 기자
저는 광주를 사랑합니다. 광주에는 민중의 넋, 역사의 혼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이 저를 육체적으로 성장시킨 곳이라면 광주는 저를 정신적으로 역사적으로 성장시킨 곳입니다.
89년 광주가톨릭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산책로에 무더기로 핀 아카시아 꽃향기처럼 '오월증후군'이 신학교를 가득 채웠습니다. 교내 축제는 십자가의 도시 광주 5월의 정신을 계승하고 승화시키는 장이 되었습니다. 전체 신학생이 5·18을 앞둔 수요일에는 오후 외출시간을 이용해서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90년 중반까지만 해도 광주의 5월엔 해마다 역사를 향한 뜨거운 소용돌이가 일었습니다. 91년 5월, 한국 신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학부 4학년 이상은 검은 수단을 입고, 저학년은 검은 바지에 흰 Y셔츠를 입고 입마개에 X자를 긋고 침묵시위를 했습니다. 금남로를 지나 도청 부근에서 전경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시위대의 선두에 선 신학생들이 먼저 어깨동무를 하자, 남대협 풍물패가 전경들 방패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울렸습니다. 북소리가 심장에서 요동을 치기 시작하자, 번갯불에 콩을 볶는 것처럼 '두-두-두-' 소리를 내며 최루탄이 날아왔습니다.
비명처럼 솟아오른 외침. '눕자! 눕자!' 신학생들은 겁 없이 도로 위에 누웠습니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어깨동무로 누운 정의의 물결. 전경들의 군홧발 소리가 천둥처럼 가슴을 때렸을 때의 공포감, 간이 콩알처럼 오그라든다는 말이 처음으로 각인된 때였습니다.
사타구니에서 터진 최루탄으로 양복에 구멍이 나기도 하고, 하늘에서 폭발한 최루탄 가루가 얼굴로 쏟아지기도 했던 91년 5월. 우리는 살육적인 공포의 바람 한 조각에도 몸서리를 쳐야 했습니다. 뿌연 최루가루로 뒤범벅이 된 옷을 털며 일어나 충장로를 향해 걸었습니다. 부산에서 온 한 신학생의 고백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야, 최루탄과 전경 군홧발 소리만 해도 이렇게 살벌한데, 특공대와 장갑차, M16총과 대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끔찍하다마!"
5·18정신 계승되지 않는 한 5·18은 역사의 진행형
자주와 민주, 평화와 통일의 성지. 광주에서 사제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 같은 한국 현대사를 넘어가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스승 예수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망월동에는 영원한 동지, 영혼의 벗 조성만이 잠들어 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의 길을 가기로 부모님께 승낙을 얻어놓았던 벗. 민주와 평화, 자주와 통일의 민족의 십자가는 그를 명동성당 별관에서 할복투신을 하도록 몰아갔습니다. 스스로를 민족의 십자가에 못 았던 동갑내기 조성만, 때로는 통일열사 조성만의 삶을 내가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괴로운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바친 의로운 광주의 영령들과 민주 열사들 앞에서 어찌 십자가가 무겁다 엄살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제 삶의 중심에 서서 저를 이끌고 있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2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슈퍼마켓 점원생활을 하던 그 시절, 5월 17일 금남로에서 보았던 계엄 특공대와 시위대의 대치상황이 되살아납니다. M16 소총을 든 계엄군이 군홧발을 구르며 시외버스터미널로 몰려올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살육적인 공포를 피하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닫아걸었던, 16세 어린 소년의 가슴에 영원히 씻기지 않는 상처를 새겨놓고 말았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 165명, 행방불명 65명, 부상자와 구속자, 그리고 연행과 구금자 등 피해자 4070명.
그러나 광주는 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요, 끝나지 않는 혁명입니다. 정신이 계승되지 않는 한 5·18은 역사의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계엄군을 광기어린 살인자로 내몰았는지, 한 다리 건너면 내 가족이고 친척인 이웃을 그렇게 무참히 죽일 수 있었는지, 짐승도 그렇게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을 누가 무엇 때문에 저질렀는지….
5·18, 평택에서는 '현재진행형'
5·18 부상자 네 명중 한 사람이 자살을 하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기간 중 국가폭력에 가담해서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사람들. 이들은 다시는 군인이 민간인 지역에 투입되는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각인시켰습니다.
5·18은 그 고귀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군부독재가 발붙일 수 없는 사회, 민주주의의 성숙을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18은 지금 평택에서 아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광주의 상처와 아픔은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그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광주와 평택은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시대적으로도 26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광주는 미국이 군부독재자 뒤에 숨어 있지만 평택은 미국이 정면에 버티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광주는 군부독재였고 평택은 민간정부입니다. 광주는 이 땅의 민주와 통일을 위한 항쟁이었고, 평택은 내 땅에 대한 권리와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광주는 예고없이 들이닥친 군부독재의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해야 했지만 평택은 형식적인 절차이지만 국회를 통과했고 예고된 경찰과 군인이 투입되었습니다.
또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광주는 미국에 대해 침묵했지만 평택은 미국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민주와 통일을 목숨바쳐 외쳤던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여 미국의 오만한 요구에 반대의 깃발을 올렸고, 자주와 통일을 넘어서 평화와 해방을 외치고 있습니다.
평택사태, 80년 광주보다 더 무자비한 국가폭력일 수도
80년 광주가 광주 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듯이 2006년 평택도 대추리 주민들만의 문제는 분명 아닐 것입니다. 광주의 정신처럼 평택은 한반도의 자주와 통일은 물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절규하고 있습니다. 광주의 정신을 승화시켜 민족의 자주와 해방을 위해 미국에 저항하고 있는 평택에 대해 그 어떤 이유로도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군부독재의 언론통제로 인해 대다수 국민이 광주민중항쟁을 고정간첩이나 불순세력이 주동한 폭동이라 비난했습니다. 오늘의 평택도 다수의 국민들, 특히 조·중·동의 보수언론이 불순한 시민단체들이 주민을 선동하여 반미운동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보수언론들이 5.18 민중항쟁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고 세계사에 길이 남을 불의한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자주와 민주, 통일과 평화의 행복한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평택에 대해 쉽게 비난의 화살을 당길 수 없습니다. 일본군에게 미군에게 두 번씩 쫓겨났고, 이제 한국군에게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의 심정을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한국 경찰과 군인과 용역깡패들에게 세번째 강제수용을 당할 처지에 몰린, 그 처참한 현장을 가보지 않고, 평택에 대해 그 어떤 평가나 비판을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80년 광주에서는 계엄 특공대가 수백명을 학살했고, 2006년 평택은 특공대가 민간인 지역에 투입되어 평화지킴이들을 진압했습니다. 똑같은 선상에서 보면 평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26년 전의 시대상황을 고려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26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주화되었습니다.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처럼 민주화된 오늘의 현실에서 특공대는 물론 수만의 전경과 용역깡패들까지 민간인 지역에 투입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택은 80년 광주의 참상을 능가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도 탄핵할 만큼 민주화된 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평택은 80년 광주보다 더 무자비한 국가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광주정신은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유린되지 않는 것'
광주의 영령들이 지금 평택의 상황을 보고 어떻게 말할까요? 5·18은 광주라는 공간을 넘어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기념비가 되었고, 80년이라는 시대를 뛰어넘어 정의와 평화의 횃불로 전 인류를 비추는 세계 역사에 길이 기억될 진보의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5·18 광주의 정신을 생각할 때. 평택은 광주의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의 찬란한 역사를 군홧발로 짓밟은 것이고, 세계 역사에 길이 기억될 식민지 역사이며,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퇴보의 역사로 길이길이 후손들에게 비난받을 국가폭력에 불과합니다.
5·18 광주의 정신을 광주에만 묶어둘 수는 없고 80년이라는 시대에만 한정시킬 수도 없습니다. 5·18 광주의 정신은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유린되지 않는 것입니다. 민주와 통일, 자주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향한 항쟁이 있는 역사 현장에서 5·18 광주의 정신은 계승되고 부활해야 할 것입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