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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죽인 농민, 황새울에도 있다 (코리아포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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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코리아포커스 | 2005-12-26 21:39 | VIEW : 1,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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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12월 22일 아침 팽성읍 농민들은 청와대 앞길로 향했다. 진압경찰에 쫓겨 청운동사무소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겨우 섰다. 농민들은 강제수용 개시를 알리는 국방부의 공고문에 불을 댕겼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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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죽인 농민, 황새울에도 있다
- 미군기지확장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 겪는 팽성읍 주민들 -
노순택 기자 , 2005-12-26 오후 4:14:29
“이젠 시한이 됐다. 오늘부터 국방부는 자유의 시간을 갖게 됐다. 강제수용절차라는 게 뭔가. 끝내 남아서 농사짓고 집 지키겠다는 농민들을 끄집어내다가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겠다는 것이다. 기름진 땅을 전쟁기지로 만들고, 농민들 보금자리를 때려 부숴 버리겠다는 말이다. 이젠 우리를 죽이겠다는 얘기다. 오늘부터 국방부는 법적으로 모든 짓을 할 수 있다.”
2005년 12월22일 오전11시. 문정현 신부와 평택 팽성읍 농민 20여명은 멀리 청와대가 보이는 청운동의 큰 길에 섰다. 청와대 코앞에서 있는 힘을 쥐어짜 고함을 치고 싶었지만, 진압경찰의 방패와 몽둥이에 밀리고 밀려, 청와대는커녕 동사무소 앞에서도 밀려, 횡단보도 앞에 겨우겨우 섰다.
이른바 ‘강제수용 개시일’ 일이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팽성읍 농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최대한 배려해 늘이고 늘려 잡은 시한이었다. 이젠 국방부로서도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이제 모든 책임은 당신들이 져야 하고, 이후 발생하는 어떤 불상사도 국방부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 이른바 ‘강제수용개시’에 관한 나라의 통보였다. 주민들에게 날아든 최후통첩이었다.
같은 시각.
2005년 12월22일 오전11시. 마흔여덟살 최관식은 영안실로 향하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해봤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팽성읍 도두리 들판에서 한 평생 땅을 파고, 곡식을 거두던 그의 손과 발이, 그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침에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었다. 청와대 앞에 항의하러 가는 사람들더러 “잘 다녀오라”고, “나는 오늘 할 일이 있다”고 인사까지 건넨 사람이었다.
방앗간에서 쌀 서른 가마니를 짊어 나르고 난 후 그는 갑자기 쓰러졌다. 미군기지확장으로 마을이 사라지고, 이웃이 사라지고, 쌀을 거둘 들녘이 사라지는 것에 반대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촛불집회에 나왔던 대한민국 으뜸 농민, 최관식은 그렇게 쓰러졌다. 겨우 마흔여덟이었다. 58년 개띠 남자였다. 딸린 새끼와 아내 곁에서 언제고 듬직하게 서 있어야 할, 아직은 살아있어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마을주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항의기자회견을 하던 시각 최관식의 몸은 식어 가고 있었다. 병원비 걱정에 그의 육신은 이내 집으로 돌아왔다. 열네살 인애가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본다. 사과 한 알, 배 한 알, 마른 북어 한 마리, 청주 한 잔…. 소처럼 일하고도 가난해야 했던 고인의 삶이 그저 먹먹하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30년 전, 충청도 산골에 살았던 최관식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지게지면서 살게 하기 싫어 고향을 떴다. 험한 산골에서 내려온 그는 너른 들이 그리웠다. 흐르고 흘러 도두리에 자리를 잡고, 힘센 자식들을 다독이며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땅을 일궜다. 죽을 힘을 다해 일궜다. 나라 땅이었기에 사용료를 내야 했지만, 괜찮았다.
이만하면 농사짓고 살만했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아들이 뒤를 이어 땅을 일궜다. 그가 최관식이다. 아버지와 함께 옥답을 일구고, 다시 아내와 자식들을 키우며 평생을 소처럼 일했던 최관식이다.
미군기지확장이 결정되자마자 그는 가장 먼저 땅을 빼앗겼다. 나라 땅이었으므로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이어서 그의 집도 위기에 처했다. 학교법인 대양학원의 부지였고, 땅을 파는 건 땅주인 맘이므로 할 말도 없었다. 그는 날마다 촛불을 들었다. 서러운 이웃끼리,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면서’ 생사를 함께 할 이웃들과 거르지 않고 촛불을 들었다.
12월24일 아침, 온누리에 예수탄생의 기쁨이 가득한 그 시간, 팽성읍 도두리에 예수는 없었다. 떠나는 아버지의 관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부짖는 육군일병 최인찬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상복 안에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지켜야 하는 알량한 조국은 보이질 않았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그의 아들, 스물한살 최인찬.
올해 2월에 입대해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가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한민국, 그 알량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그는 복무 중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웬일인지 그날따라 어머니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응급차에 아버지를 싣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최인찬은 그렇게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고향, 황새울 들녘은 자칫 사라질 운명 앞에 놓였다.
대한민국 육군 일병 최인찬은 가족을 지킬 수 없었다. 고향마을도 지킬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버지의 장례 내내 군복을 입고 있었다.
고인에겐 심장병이 있었다. 그래도 탈 없이 농사지으며 삶을 이어왔다. 허나 땅을 빼앗기고, 집마저 빼앗길 위기 앞에서 가장의 심장은 오그라들었다. 농민의 간은 졸아들었다. 두들겨 패 죽여야 살인일까.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2005년 12월24일. 온누리에 예수탄생의 축복이 가득한 이날.
농민 최관식은 땅에 묻혔다. 병원비 걱정에 변변한 장례식장을 잡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렀다. 영정사진 하나 없어, 급조한 사진이 초라했다(대관절 누가 그 나이에 영정사진을 준비한단 말인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휴대폰으로 이모티콘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릴 시간에 스물한살 최인찬과 열네살 최인애는 아버지의 관을 부여잡으며 서럽게 울었다.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 지켜보는 마을 주민 모두가 숨죽여 울었다.
최관식에게는 심장병이 있었다. 그는 심장병으로 죽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한미군이 그를 때려죽인 것은 아니다. 허나 때려죽여야만 살인이던가.
평택 팽성읍 주민들을 극심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말려 죽이는 짓거리를 ‘살인’이라는 이름 말고 또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황태섭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도두리 최춘호 이장님이 돌아가셨다. 김월순 할머니는 가슴이 벌벌 떨려 잠을 못 이룬다. 밥을 거를 줄 알았으되, 촛불집회를 거를 줄 몰랐던 최관식의 죽음을 ‘자연사’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이없이 먼 길을 떠나는 이웃의 육신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큰절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마을 주민들은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 상태다. 간밤에 이사를 떠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오순도순 정을 나누던 작은 마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2005년 11월15일, 대한민국 정치1번지 여의도에서 경찰의 몽둥이에 맞아죽은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넋이 청와대 앞길을 배회한다. 도두리 농민 최관식의 혼백은 청와대 앞 마당에서 “올해도 황새울에서 농사짓자”며 겨울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 육군 최인찬 일병의 원망은 어디로 향해야 할 지 몰라 헤맨다.
사람들을 죽여 놓고도 사과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대통령, 농민의 설움을 감싸 안을 줄 모르는 그를 구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쳤던 ‘탄핵 반대’의 구호는 우리들의 초라한 과거로 남았다.
480여 일째를 맞는 촛불집회. 이 땅에, 정치하겠다는 작자들이 넘쳐나는 이 땅에, 농민 설움 하나 보듬어줄 정치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팽성의 농민들은 오늘도 비닐하우스에 모여 목이 터져라 “기지확장 반대”를 노래할 것이다. 같은 시간, 이 서러운 노래를 틀어막기 위해 나랏님은 오늘도 사납게 눈알을 번뜩일 것이다.
이 나라…제정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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