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단이 왠 집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평화바람은 "근거지 유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한다.
"평택미군기지총집결저지"의 기치를 들고 전국을 돌며 평화를 외친 이들은 평택에 지장물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2월 아예 보따리를 싸가지고 와 대추리에 눌러앉았다.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의 두시간씨. ⓒ민중의소리
대추리 주민으로 산 지 어언 10개월. 그동안 평화바람 유랑단원들은 이곳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생활에 질펀하게 동화되면서 이들의 한 많은 삶과 투쟁의 순간 순간들을 영상과 인터뷰를 통해 고스란히 기록해 나갔다.
그리고 11월 유랑단은 책 한권을 발간했다. 주민 28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모음인 '들이 운다'를 통해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의 역사를 훑어 볼 수 있었다.
이번 인터뷰를 총괄하며 책 발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유랑단원 두시간(37)씨는 11일 인터뷰 중 숙소로 배달된 따끈따끈한 책을 반색하며 반겼다. 넓은 황새울 들녘이 인쇄된 노란표지의 책 한권을 집어들어 한장 한장 넘겨보는 두시간씨의 눈빛이 애틋하다.
"휴..책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책 내는데 많이 힘드셨나봐요."
"말도 마세요. 인터뷰를 처음 해보는 유랑단원들이 서른 명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 해 책까지 내려고 하니 말도 못하게 힘들었죠. 수백번의 시행착오 끝에 책 한권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뷰 질문도 막연했고, 뭔가 결과물을 빨리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깊이 있는 대화가 안 된 경우도 있었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터 인터뷰를 시도하다 보니 이제까지 기존 언론들에 심한 불신감이 있었던 주민들의 보이지 않는 경계도 있었다고 한다.
"평화유랑단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속내를 드러내보이기가 편하지 않으셨겠지요. 그러다 국방부 지장물 조사 때 조사단들과 같이 싸우기도 하고 주민들하고 일도 하다보니 차근차근 우리를 대추리 주민일원으로 받아주시더라구요."
"농번기 때 주민들이 먼저 일 도와달라며 숙소를 찾으셨을 때 너무 고맙고 기뻤어요. 이렇게 가까워지는구나 많이 생각했습니다."
"책 제목이 '들이 운다'인데 이 제목을 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의견이 분분해서 원고를 다 넘기고 나서까지 제목을 못정했어요. 마지막에 '들이 운다'와 '들이 웃네'로 압축이 됐는데 '들이 웃네'를 지지한 사람들은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죠. 결국 '들이 운다'가 된 것은 주민들에게는 희망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만 독자들에게는 이 곳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게 좋지 않겠냐고 판단해 이 이름으로 결정했습니다."
"인터뷰 하신 분들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그는 갑자기 "내가 죽을 때 혼자 죽을 줄 알아? 민병대", "나는 돌멩이로 만들어진 사람이야. 남언년"이라고 중얼거렸다.
△11일 평화바람 숙소로 막 배달된 따끈따끈한 책을 살펴보고 있는 두시간씨. ⓒ민중의소리
"다들 기억에 남죠. 주민분들이 했던 핵심적인 말들이 다 기억나요. 이제는 아예 다 외워요. 그 중에서도 옆집 조선례 할머니는 원대추리에서 쫒겨난 사례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처음 들려주신 분이라 기억에 남고, 팽성대책위 조직국장인 신종원씨는 미군기지확장이야기가 돌면서 마을의 공동체가 어떻게 깨져나가고 있는가를 들려줘서 기억에 남습니다."
"주민들 사연 들으면서 울지는 않으셨어요?"
"인터뷰 할 때는 울지않았는데 나중에 녹취 풀고 원고 교정보면서는 많이 울었어요. 너댓번 읽으면 덜 할 것 같은데 들으면 들을 수록, 읽으면 읽을 수록 감정이입이 돼버리죠. 이 책을 읽을 분들에게도 그런 기대를 하고 있어요. 빨리 빨리 넘기기 보다 한장 한장 꼼꼼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겠죠?"
"음..뭐랄까요. 평택문제를 보는 여러가지 접근법이 있는데요, 정치적 접근이 아닌 농민들의 삶이라는 통로를 거쳐 평택미군기지 문제를 보는 방법이 진리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봐요. 이 책은 그런 주민들의 목소리를 진솔하고 처절하게 보여주는 역할인 거죠. 미군기지 문제가 단지 전쟁의 위협을 부르는 것 뿐만이 아니라 대추리, 도두리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파괴하고 있다는 것, 공동체라는 것을 산산히 부서버리고 농민 개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막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