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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황새울 들녘의 432번째 촛불시위 (코리아포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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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코리아포커스 | 2005-11-08 01:49 | VIEW : 1,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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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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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어디로 떠나란 말인가
황새울 들녘의 432번째 촛불시위
노순택 기자 , 2005-11-07 오후 3:00:55
너른 들녘은 온통 바람이었다.
겨울문턱(立冬)을 하루 앞두고, 이제 세상은 온통 내 것이라는 듯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헝클고, 깃발을 할퀴었다. 누구는 얼굴을 파묻고, 누구는 뒤로 걷는다. 대나무에 매인 깃발만이 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황새울 들녘을 헤쳐 나갔다.
차라리 바람이 불어 나은지 모른다. 바람을 탓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질식해버릴 것 같은 황새울의 긴장감을 바람에 날려 보낼 수만 있다면, 바람은 아무리 휘몰아쳐도 좋으련만.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나는 대추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외지를 떠돌았어요. 그러다가 대추리 사람을 남편으로 만나 열여섯 살에 다시 대추리로 돌아온 거예요. 나는 배운 것도 하나 없어요. 겨우 내 이름만 쓸 줄 알지, 누가 주소 좀 적어달라면 진땀께나 흘려요. 그래도 여기 대추리 사람들하고 오순도순 잘 살았어요. 13년 전에 남편이 죽고, 새끼들도 출가해서 다 외지에 사니깐, 나한테 남은 건 대추리밖에 없어요. 미군 비행기 소리요? 수십년을 귀에 박히게 들어온 거니까 암시랑도 안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슨 소리만 나도 가슴이 벌렁벌렁 잠을 못자겠어요. 이제 쫓겨나면 어디서 살아야하나 싶고, 오만생각이 다 들어요. 새끼들이 나를 받아주기야 하겠지만, 누가 새끼들 짐이 되고 싶나요. 나는 그냥 내 평생 이웃하고 살아온 사람들하고 늙어죽도록 함께 살고 싶어요. 이게 내 소원이에요. 우리 마을사람들 진짜 너무 고생하고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경기도 평택 팽성읍 대추리 136-15번지에 사는 예순여덟 살 김월순 할머니는 조용하고 수줍게 살아온 이야기를 건넨다. 미군기지 철조망 바로 옆에 살면서도 미군 미운 줄 모르고 살아왔다. 그 사람들 미워한다고 지난 과거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가만있는 우리를 쫓아내겠다니....” 할머니는 길바닥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오늘, 이 바람 부는 들녘에서도 할머니는 빌고 또 빌었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꽹과리가 귀청을 때린다. 장구와 북이 신명을 울린다.
돼지머리가 방긋 웃고, 막걸리와 시루떡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인상 쓰면 뭐 할 것이여, 신나게 춤이나 춰 봅시다.” 상쇠가 흥을 돋우고, 사람들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다. 이 짙은 시름을 잊게 해 달라고 두 손 벌려 하늘님께 빌었다.
이천오년 십일월 육일 오후, 황새울 들녘.....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마을로 돌아오는 길가에 사람들은 허수아비를 박았다. 곡식을 모두 거둔 빈 들판에 허수아비를 세웠다. 누구를 쫓아내려고 세우지 않고, 제발 우리를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세웠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폐교가 된 대추분교에서 스님들은 승무를 선보였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을 쓴 스님을 향해 사람들은 절하고 또 절했다. 종교의 초월은 대추분교에서 이뤄져 왔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운동장 바닥에서 미사를 올리고, 무당이 칼 위에 서고,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 스님들까지 부처님께 바치는 춤사위를 올렸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모여도, 미군 하나 감당하는 게 벅차다. 인간세상에서, 특히나 이 땅에서 미군은 이토록 세다.
자식들 교육시켜달라고, 쌀을 팔고 보리를 팔아 세워 놓은 대추분교는 경기교육청 나리들께서 국방부에 헌납을 해버렸다. 나랏법을 다스리는 천정배 법무장관은 추석에 마을 주민들에게 편지를 보내, “다시는 대추분교에 들락거리지 말라”며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고해 왔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민사1부는 현재 이 가처분 신청을 심리중이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우리의 땅에서 계속 살아가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뿌리가 계속해서 내려온 이곳이 짓밟히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해방 뒤에 한 번 빼앗은 것도 모자라 대대로 두 번 이상을 이렇게 빼앗다니.... 이곳 사람들의 땅을 더 이상 빼앗지 말아주세요. 건강하게 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대추리 175-12번지 노희정 올림.”
“존경하는 판사님 이 땅은 한이 맺힌 땅입니다. 이번 미군기지 확장 일로 우리 주민이 또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흙과 자연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 대추초등학교는 우리 땅을 기부하여 우리 손으로 지은 학교입니다. 선처를 부탁합니다. 대추리168-1번지 홍옥기 올림.”
“안녕하세요, 판사님. 우리 대추리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대추초등학교는 우리 주민들의 일부입니다. 제발 학교를 빼앗아 가는 것은 말아주세요. 판사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꼭 한 번 와서 보세요.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를.... 대추리128-1번지 김기옥 올림.”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주민들은 민사1부 한정규 판사에게 편지를 썼다. 분노를 누르고 공손한 말투로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 노순택/코리아포커스
뉘엿뉘엿 해 기우는가 싶더니, 땅거미가 깔렸다.
사람들은 비닐하우스에 몰려들었다. 저마다 촛불을 들었지만 따뜻하지는 않았다. 날이 찼다. 어느새 사백서른두번째를 맞는 황새울의 소박한 촛불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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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소리 : [화보] 황새울 들녘 대동놀이..."오늘만 같아라" ㅣ 맹철영 기자
+ 민중의 소리 : [영상] "꼭 이기고 싶어, 질긴놈이 이긴다는데" [현장] 황새울 들녘 대동놀이 <우리땅에 생명을>
+ 한겨레 : 허수아비도 ‘미군기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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