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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보리가 된 '30일간의 거리예술제' 폐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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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중의소리 | 2006-11-13 08:18 | VIEW : 2,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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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보리가 된 '30일간의 거리예술제' 폐막
문예인들, "미군기지확장저지는 이제 부터"
서정환 기자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와 대추리 도두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예인 공동행동 '들사람들'이 30일간의 거리예술제를 진행하면서 매일 무대를 열고 닫을때 외쳤던 구호였다.
지난 달 13일 시작된 거리예술제는 이달 11일,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우리땅을 지키기 위한 802일째 촛불집회와 함께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비가 와서 무대를 열지 못한 이틀을 제외하고는 휴일도 없이 꼬박 한달 동안 진행된 예술제였다.
40팀의 가수와 19인의 시인, 20여명의 화가, 12개 팀의 춤 공연, 8개 팀의 연극, 12개 팀의 전통 춤ㆍ소리ㆍ무예ㆍ굿 공연, 2개의 영상제작 단체와 독립영화협회 등이 이 무대가 남긴 출연자 기록이다.
△30일간의 거리예술제를 이끌어온 가수 정태춘 ⓒ민중의소리
△오지총 밴드가 공연 중인 30일간의 거리예술제 마지막 무대 ⓒ민중의소리
공연이 열린 종각은 공공장소였기 때문에 무대는 매일 같이 설치되고 철거되기를 반복했다. 따라서 매일 같이 궂은 노역을 도맡거나 기금 마련을 위한 기념품 판매 및 모금 진행을 맡은 자원봉사자들도 종로 거리에 몸을 굴려야 했다.
자신의 작품이 헐값에 노상에서 팔리는 난처함을 인내하고 기꺼이 작품을 찍어 낸 판화가, 정태춘씨의 시집 '노독일처'를 기증한 출판사, 콘센트를 비워준 어느 작은 가게 주인, 기획단, 기술자 등도 무대의 아래, 조명의 뒤, 객석의 옆에 있던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이었다.
△아흔을 코 앞에 둔 대추리 조선례 할머니가 찬 바닥에 앉아 공연을 보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전에는 평화ㆍ인권 활동가들이 그간 몇 차례의 행진을 벌여 왔지만, 문예인들의 이 공연은 9.24 평화대행진 이후 북한핵실험이 단행되고 공안사건과 함께 몰아치는 찬 바람 속에서, 유일하게 눈에 띈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 투쟁이었다.
그러나 무대는 주로 쓸쓸했다.
대중적 인기를 업고 있던 '윤도현 밴드', '뜨거운 감자'가 출연하던 날에는 약 500여명의 젊은이들이 운집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날들에서 선채로 공연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수십 명의 중ㆍ장년들이었다.
이들이 공연을 벌이는 기간에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팽성주민대책위' 김지태 위원장은 1심에서 실형 2년을 선고 받았고, 같은 목적의 범국민대책위 활동으로 6명의 새 구속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주민촛불 집회는 800일을 맞았으며, 799일째 날에 국방부는 다시 한번 들녘에 철조망을 치고 '포위망'을 좁혔다. 오랜 싸움에 지친 도두리 주민들 상당수는 끝내 정부가 내민 지원책에 도장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해를 넘기면 구순을 맞는 조선례 할머니가 그 예술인들을 직접 보러 대추리에서 올라와 찬 아스팔트 바닥위에 앉았다. '온앤오프'가 춤 공연을 펼치며 조 할머니를 껴안았다.
시인 백무산은 그 모습들을 보며 그 자신도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는 시대에 절망하고 있다"며 '대추리로 가는 길'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중략)...
흘러가는 모든 것에는 다른 저쪽이 있다네.
바람이 부는 것은 차이의 소통이라네.
아침 숲이 저리 아름답게 반짝이는 건
수 많은 차이들이 서로를 배려하기 때문이라네.
세상을 움직이는 것. 삶을 끌고가는 힘.
누구하나 정치권력, 국민이나 이데올로기 따위
거대한 것인줄 알지만,
그것은 한번도 우리 삶을 아름답게한 적이 없고
존재하는 것들을 진실되게한 적이 없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준 적이 없었어.
폭력과 규율과 공포와 전쟁만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우리 삶 가운데 사소한 것들 속에
풀꽃 처럼 작고 둥근 것들 가운데
그 차이들 속에
그 틈을 비집고 숨쉬고
꽃을 피우고 반짝이는 것들이 있음을.
그곳에 진실의 빛이 두근거리고 있음을
...
아 저곳에 평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네
저 초록의 대지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네
평화가 자신을 파산하게 할 것이므로
평화가 자신을 고철로 만들 것이므로
초록이 두려워 붉은 꽃을 토해 낼까 두려워
들꽃을 지우고 들녁도 노을도 새들의 길도 지우고
철조망에 바리케이를 치고 야만을 지키는 자들이여
...
- 백무산,'대추리로 가는 길' 中
백 시인의 시 처럼 "'평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들녘을 지워' 농사꾼에서 백수가 되었다"는 팽성주민대책위 신종원 조직국장은 "정부가 주민들을 뺀 채 동원된 사람들을 데리고 주민 설명회를 열려는 것을 막으려다 구속된 사람들을 위해 처음 촛불을 들었던 것이 오늘로 802일 째"라며 "여기 계신 여러분이 끝까지 관심을 가져 주시면 주민들도 땅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범대위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 ⓒ민중의소리
범대위 문정현 상임대표는 "정권은 김지태를 감옥에 가두고 주민들도 철조망에 가두었다"며 "조금씩 조금씩 말려 죽어가는 지금의 대추리는 80년 5.18 광주보다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다. 이 나라에 희망이 있는가"라고 호소하던 문 신부를 사회를 맡은 배우 권해효씨와 최광기씨가 껴안았다.
도종환 시인이 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이라고 격려했다.
'풍경'과 '오지총 밴드', '뭄바트랩' 등이 떨어져 나갈듯 시린 손가락으로 기타를 뜯으며 노래를 이어갈 때, 무대 저 뒤편에서는 대추리 주민들이 배추를 내리고 있었다. 고마울 일이 무엇이 있겠나 싶지만, 서울 시민들에게 선물한다고 텃밭의 배추를 한 차 싣고 온 것이다.
지난 달 13일 첫 공연의 문을 열었던 정태춘ㆍ박은옥이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최광기 씨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고 소개했지만 정태춘은 "대한민국이 대추리ㆍ도두리 주민들을 버렸듯 나는 그 대한민국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의 시는 날카롭고, 그의 노래는 사람을 울린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서 말문을 쉬이 열지 않는 정태춘은 하고 싶은 말들을 세 곡의 노래 속에 묻었다.
해가 바뀌는 그 시각마다 한 이름, 한 자리 한다는 사람들이 당목을 쥐고 쳐대는 보신각종. 그 때 마다 수만명이 모여드는 그 종 아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며 정태춘과 대추리 주민들, 예술인들은 김지태 이장의 초상화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종을 울리기 위해서였고, 그들이 내는 종소리는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대추리 만세"라는 외침이었다. 문예인들은 30일간의 거리예술제를 닫으며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다짐했다.
지금은 보리를 파종하는 시절이다.
보리가 찬 겨울 마른 땅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이듬해 봄이면 파란 싹을 틔우 듯, 이들의 공연이 어떤 싹을 틔우게 될지는 봄이 되어 봐야 알 것이다.
'30일간의 거리예술제'는 대추리와 도두리의 주민들에게, 아직 불도 안때는 구치소 찬바닥에 누운 김지태 대추리 이장에게, '평화' 또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파종한 서른 개의 보리씨알이었다.
△촛불에 의지해 추위를 견디는 대추리 주민들 ⓒ민중의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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