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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떠나면 맨 먼저 돌아올 땅 대추리 (4/7 매향제 소식)

◆ 출처 : 오마이뉴스

2007-04-02 15:48 | VIEW : 2,440

미군 떠나면 맨 먼저 돌아올 땅 대추리
대추리를 지킨 정신들이여, 영원하길

강기희(gihi307) 기자

▲ 대추리 설치작품. 미국 영토에 미군이 점령한 나라들이 들어있다. ⓒ 강기희

사람들이 떠난단다. 힘겹게 제 땅 지키려던 대추리 주민들이 하나 둘 땅을 떠난단다. 임시로 옮긴 새 보금자리라는 게 마당도 없고 씨 뿌릴 땅도 없단다. 내리는 비 맞으며 싼 보따리, 몰아치는 황사바람 맞으며 푼단다.

점령군으로 온 미군, 대추리 들녘 빼앗아

제 땅에서 쫓겨나는 대추리 사람들은 보따리를 싸면서 울고 풀면서 운다. 텃밭에 심어놓은 마늘을 어쩌지 못해 울고 너른 논 바라보면서 또 운다. 억장 무너진 건 오래전 일이지만 그래도 이삿짐 꾸리며 흘릴 눈물은 있단다.

그들마저 떠나고 나면 대추리는 빈들만 남는다. 머지않아 대추리 빈들엔 아스콘이 깔리고 건물이 들어선다. 너른 들엔 높은 철조망이 쳐지고 그 안엔 영어로 지껄이는 미군이 진주한다. 쉴 새 없이 뜨고 내리는 미군 전투기는 대추리의 하늘길 마저 막는다. 그 하늘에다 연을 띄우던 아이들의 그림자가 울고, 밤길을 짖어대던 개들의 울음 또한 구슬프다.

나는 아직 미국의, 또는 미군이 한 말을 믿는다. 순진한 탓이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탓도 있다. 미국은 강하고 나는 약하다. 그러니까 믿는다. 강한 나라의 말은 절대적이라 믿는다.

1945년 9월 9일.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부는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하의 포고문 제1호를 발표했다. 포고문은 비행기에서 혹은 거리에서도 뿌려졌다. 맥아더 사령부가 낸 포고문엔 "본관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1945.9.9) 북위 38'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했다"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나는 이 문구를 굳게 믿는다.

포고문 제3조엔 그 말을 믿지 않았다간 큰일 날 내용도 있다. 그러니 미국이 한 말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온전한 정신으로 오래 살려면 믿어야 했다.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믿었기에 평생 미국을 향해 손가락질 한 번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포고문 제3조]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하에서 발표한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 행위 또는 공공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은 이제 대추리 땅까지 점령했다. 점령군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점령군에 반항하면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믿기에 저항한다. 포고문에 의하면 우리는 해방된 나라가 아니었다.

▲ 경찰에 의해 파괴된 대추리 분교 잔해 위에 농민의 희망이 담겼다. ⓒ 강기희

▲ 부서진 집과 벽화. 역사를 만드는 건 오래지만 부수는 건 순간이다. ⓒ 강기희

1945년 8월 15일 이후 우리 민족이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단 며칠에 불과했다. 그게 전부였다. 일제가 물러간 자리는 미제가 차지했다. 그 후 60년이 넘은 지금까지 미군이 점령군이란 말을 거두어들였다는 보도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대추리엔 땅을 지키려던 사람들의 절규만 떠돌아

그러므로 나는 아직 미군이 발표한 포고문의 효력을 믿는다. 그 말을 믿기에 미국에 저항하고 '양키 고 홈'을 외친다. 그것은 식민지 나라 민중으로 당연한 저항인 것이다. 평택 대추리 일대에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일도 그러했다.

황사바람이 전국을 뒤덮는다. 점령군은 황사처럼 그렇게 왔다. 모든 민중 입 닫게 하고 눈 감게 하러 황사처럼 단숨에 점령군으로 몰려왔다. 굴욕적이라는 한미FTA 협상 마지막 날인 오늘도 미국은 황사처럼 이 땅을 덮는다. 군사적 점령에 이어 경제적 점령의 수순이다.

대추리 주민들의 눈물이 황사 먼지에 범벅되는 날 대추리 하늘엔 마지막 비행을 준비하는 철새만 날았다. 굴삭기에 의해 파괴된 대추리 분교 마당엔 정태춘과 박은옥의 노래가 황사먼지로 콜록거리고 갈기머리를 한 전인권의 노래와 김원중의 '봄날은 간다'가 내리는 봄비에 젖는다.

김현성과 손병휘의 노래가 날아오르는 미군 헬기를 따라가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제 나라 땅 지키겠다고 나선 민중들을 향해 이 나라 경찰은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그런 이 나라 경찰 뒤로 흘러나오는 미군들의 웃음이 걸작이다. 가수 박성환은 그런 미군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며 "FUCKING U.S.A"를 외쳤다.

주민들이 떠난 대추리는 폐허와 다름없다. 이제 대추리와 도두리에 남아있는 것은 문화예술인들이 남긴 작품들뿐이다. 마을 곳곳에 남겨 놓은 설치작품과 벽화, 벽시에 담긴 뜻은 식민지 나라 민중의 이상이 되고 말았다.

아흔이 넘은 이기형 시인의 "외세에 짓밟힌 겨레의 가슴이 찢어진다"라는 절규가 그러했고, 지리산에서 달려온 이원규 시인의 "대추리가 반 평화 반 생명 아수라 지옥, 공동묘지입니까!"라는 외침에 그러했다.

점령군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그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추리를 점령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점령군에 저항하면 엄벌을 받는다는 걸 잠시 잊었다. 무시무시한 포고문을 잊고 살았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을 때도 그랬다. 점령군에 저항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줄 잠시 잊었다. 촛불 든 수많은 손들이 점령군의 포고문 내용을 망각했다. 미대사관에 근무하는 이들이 창밖을 바라보며 "세상 많이 좋아졌군"하는 것도 몰랐다. 이왕 잊은 김에 포고문 따위일랑 다 잊어버리고 잃은 내 나라 땅 다 찾자.

▲ 지난해 5월 경찰에 의해 파괴되기 전의 대추분교 모습. ⓒ 강기희

▲ 무너진 대추분교 모습. 이층 건물이 폭삭 주저 앉았다. 고 구본주 작가의 갑오농민상은 강력한 항의로 남았다. ⓒ 강기희

미군 떠나면 맨 먼저 돌아올 거야!

미국에게 할 말을 하겠다며 팔을 걷어 붙였던 이 나라 대통령은 일찌감치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할 말이 아니라 팔 걷어붙이고 '맞짱'이라도 한번 떠 보길 바라는 민중들의 기대는 그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 이미 버렸다.

이 집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가라고 하는 말
처음엔 콧등으로두 안 들었쥬
집을 다 부수고 미군이 뭔가 다시 짓는다는데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쥬
시상 천지에 저렇게 번듯한 내 집을 부시다니
지은지 을매 되지두 않은 새 집을
저 집에서 죽으려고 마음먹은 집을
아니 누구 허락받구 부신대유
나라에서 그런 짓 해두 되남유
멀쩡한 나랏님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유

미국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읎다고
사람덜이 하나 둘 떠나두 난 떠날 수 없었쥬
아니, 내 집을 두구 대체 어디루 간단 말이유

촛불 들고 간절히 빌면 안 가두 된다기에 믿었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저녁만 먹으면 촛불 들고 빌었쥬
행여 부정이라두 탈까싶어 털끝만큼두 의심 안했어유 참말이여유
이런저런 유명한 사람들이 찾아와
담시(詩)도 써주구 담그림두 그려주구
쭈그러진 내 얼굴두 그려줬쥬
잇몸 드러나 뻘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이
조금 민망스럽기는 해두
내가 봐두 이쁘게 잘 나온 그림이었쥬

그란디 밤마다 촛불로 환했던 학교두 허물어지구
집으로 들어오는 길두 끊어지구
구신 나올 것만 같은 빈집들만 서 있는 이 곳에서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집을 버리구 떠나유
주인 잃고 서 있는 빈집에게 미안해유
학교처럼 초라하게 무너질
내 집을 생각허믄 가슴이 미어져유
935일 초가 흘린 눈물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흘러유

내 땅에서두 쫒겨나는데
남의 땅에서 오래오래 살 수는 없쥬 안 그류?
반드시 미군이 떠날 날이 올 거라고 난 믿어유
그래서 내 땅을 다시 찾게 되는 날
가장 마지막에 떠난 내가
가장 먼저 이 땅에 들어올 거유
내 눈 감는 날까지 그런 좋은 날이 안 오믄
죽어서 영혼이라도 돌아올 거유

두구 봐유 내 말이 그른가 안 그른가 - 유진아 시 '대추리 2층 양옥집 할머니' 중에서

지난 3월24일 대추리를 찾았을 때 마을은 이미 전쟁 직후의 모습이었다. 무너진 집들은 처참했고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라고는 고샅길뿐이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으며, 그 잔해 더미만으로 무슨 그림이 있었던 곳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 빼앗긴 대추리 들녘. 멀리 문무인상이 보인다. ⓒ 강기희

이제 대추리는 미국 땅, 곧 관계자 외 출입통제

마지막이 될 대추리행에서 나는 내가 만들어놓은 흔적들을 어쩌지 못해 가슴을 쳤다. 내 글이 있는 전봇대와 벽을 떼어내 그것을 등짐이라도 져 집으로 옮겼다가 대추리 들녘에 다시 볍씨 뿌려지는 날 그 자리에 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 벽돌로 만들어진 벽은 무거웠고 전봇대는 나 보다 몇 배는 컸다. 그것들을 망연히 바라보다 사람들이 살았던 빈 마을을 돌아보았다. 비가 내린 골목은 조용했다. 사람 떠난 빈 집엔 술병이 뒹굴었고 화단으로는 주인과 함께 떠나지 못한 봄꽃이 서럽게 피어났다.

골목을 걷다 진도개인 백구를 만났다. 백구는 목줄을 하고 있었으며 사람이 나타나자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함께 마을을 돌던 이들이 그런 백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군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백구는 굶어 죽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하여 살아남는다 해도 내리치는 굴삭기에 의해 목숨을 이어가긴 힘들 삶이다.

백구의 운명이 대추리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4월 1일, 주민의 이주가 끝나면 대추리는 버려진 공간이 된다. 이날부터 대추리 출입은 사실상 통제된다. 4월 7일 대추리를 지키던 문예인들이 대추리에서 마지막 행사인 매향제를 연다.

매향제가 끝나면 대추리는 역사속에 묻힌다. 대추리에 남아있는 숱한 흔적들이 먼지 되어 사라지는 현장은 공개되지도 않는다. 문명국가에서 이래도 되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점령군들의 기세가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일인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깟 설치작품과 벽화와 벽시는 다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들이 소중한 이유는 작품성의 차원이 아니라 작품에 담겨있는 민중의 저항 정신이다. 점령군으로 왔다는 미군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사는 이들이 미군에게 저항한 민중예술의 결정체이기에 소중하다.

언젠가 이 나라가 자주국이 되어 미군이 떠나게 되면 유해발굴을 하듯 대추리 땅에 묻힌 유물들 하나씩 빛을 보게 해야 할 일이다. 빼앗긴 들녘에 봄 오는 날 우리는 비로소 해방춤 추며 대추리 들녘에 깔린 아스팔트 걷어내고 볍씨를 뿌릴 것이다.

대추리를 지킨 정신들이여, 영원하길.

▲ 미제여, 내 들에 핀 꽃을 꺾지 마라. ⓒ강기희

일시 : 2007년 4월 7일 오후 2시
장소 : 대추리 일원
주최 : 팽성주민대책위 / 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 / 평택지킴이

1. 매향제 의미
매향이란 하늘과 땅의 신을 만나 복을 빌기 위해 향을 피우거나 향나무를 묻는 풍습을 말한다. 대추리 매향은 지금은 비록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고향 마을을 떠나지만, 언젠가 주한미군이 이 땅에서 물러나고 자주적인 나라가 되었을 때,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는 의식이다.

2. 행사일정 및 내용
오후 2:00 : 매향제를 알리는 풍물패의 길놀이
오후 2:30 : 문무인상 앞
해원상생굿 (춤꾼 이삼헌의 해원춤)
지킴이를 불에 태우며, 주민들의 소원을 함께 날리는 행사
오후 3:00 : 뱃놀이 (지킴이~대추분교)
풍물패를 앞세우고 뱃놀이를 하며 행진
오후 4:00 : 매향(대추분교 운동장 한가운데)
향나무에 주민들의 소원을 써 넣는 시간
향나무를 묻는 시간
신종원이장 / 문정현신부 맺음말

* 4월 8일 이후 대추리는 모든 출입이 금지되며 미국의 땅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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