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드리는 호소문
다소 길더라도 우리 농민들의 솔직하고 절절한 심정을 말씀드리오니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꼭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라 팽성 지역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가 대규모로 확장된다고 합니다. 정부의 법적 절차는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고 이젠 귀 위원회의 재결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책위와 팽성 주민들은 처음부터 미군기지 확장은 안된다고 주장해왔고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강제적으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렇게 여러분께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정부에서 발표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미군기지 확장 예정 부지의 면적은 자그마치 285만평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대추리와 도두2리라는 마을 전체와 동창리 일부 가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밖의 지역은 대부분이 논입니다. 위 마을 말고도 신대리, 함정리, 내리, 본정리, 두정리 등의 주민들은 수용예정지역 논에서 경작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계수단인 논을 수용해 간다면 이런 마을들의 농가 또한 생활이 막막해질 것입니다.
285만평에 포함 되는 마을 중 특히 대추리는 일제 시대에 군사기지 확장 공사로 처음 강제로 쫓겨났고 그 뒤 1952년도에 미군이 비행장을 확장하면서 두 번째로 강제 수용된 마을입니다. 그 당시 대추리 주민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야산 언덕에 굴을 파고서 추위를 견뎠습니다. 그 과정에서 몸이 약한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달리 하였습니다. 그런 주민들의 한(恨)은 아직까지도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강제로 나가라고 하니 이 곳 주민들은 너무나 억울해 도저히 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런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수용한다면 우리들은 죽을 각오로 막아낼 것입니다. 두 차례나 당한 설움과 한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손들에게 우리가 죽기 전에 해줄 수 있는 한 가지 사명입니다.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미군기지 확장 사업을 시행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또한 주민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을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미군기지 확장 사업에 대해서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사전에 한 번도 정부관계자가 여기에 와서 상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정부에서 다 정해놓고 우리들에게는 통보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가 하는 사업이라 해서 당사자인 주민들에게는 일언반구 없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군사독재시절이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놓고도 정부에서는 강제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예전처럼 보상 한 푼 없이 쫓아내지는 않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나가기 싫다는데 몰아내는 게 강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정부에서는 충분한 보상과 안정적인 삶의 보장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살아오면서 터를 잡은 내 고향을 지키고 싶은 것이고 또한 한평생 이웃들과 맺어 온 삶들을 잃고 싶지 않은 것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땅과 마을을 국가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땅은 우리의 목숨이고 우리 마을은 우리의 삶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갯벌에 둑을 쌓아 논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아무런 기계장비도 없이 오로지 삽과 가래질을 해서 둑을 쌓은 것입니다. 힘들여 쌓은 둑이 썰물에 쓸려갈 때 그것을 막으려다 물에 떠내려가 죽은 사람도 허다합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만든 땅을 몇 푼의 돈으로 가치 매길 수 없습니다.
않습니다.
우리의 땅은 생명의 땅입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쌀을 가지고서 6만여 명이 1년 동안 먹고 살아갑니다. 우리 땅이 죽음의 땅으로 된다면 당장 6만여 명이 굶주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땅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도 함께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철새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평택호와 들판에서 먹이를 얻어서 살아갑니다. 이런 생명의 땅을, 생명을 죽이기 위한 미군의 전쟁기지를 세워, 죽음의 땅으로 만들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땅을 빼앗아 미군기지로 만드는 것은 비단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남한을 지켜주기 위해’ 있다는 게 주한미군의 존재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통폐합하면서 평택으로 주요 미군기지를 이전한다는 것이 주한미군의 재배치이고 또한 ‘대북방어’라는 지금까지의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국 및 대북한 선제공격’이라는 역할로 바꾸려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주한미군이 이제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역할로 변경이 되는 것입니다. 구한말 외세에 의한 전쟁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많은 피해을 당했습니까! 그런데 앞으로 우리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요인 중의 가장 큰 것이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과연 우리민족이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요?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단순히 기지의 통폐합과 이전, 확장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또한 주한미군재배치에 따른 비용이 6조원 가까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상가이고 향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이 되면 얼마나 더 들어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가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전액 우리나라에서 부담을 해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전쟁기지를 만들려는데, 왜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해야 합니까! 자꾸만 살기 힘들어지는 서민들의 허리를 더욱 졸라매는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당장 철회되어야 합니다.
최근 남과 북의 사이가 호전되면서 경제교류와 정치교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점점 더 통일의 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통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 국민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물론 아니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평택의 미군기지는 앞으로 100년이 가도 변함없게 튼튼하게 지을 것이라고 미군 사령관이 발표를 하였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집결은 영구히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하겠다는 미국의 의도인 것입니다.
수도 서울에서 외국군 기지를 몰아냈다고 우리나라의 자존심이 서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자존심은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미국의 의도대로 주한미군이 영구히 주둔하는 한 ‘자주국방’은 요원한 길일 것입니다.
이상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당부를 드립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의 땅을 미군의 전쟁기지로 우리의 땅을 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리의 땅을 지켜낼 것입니다. 이것이 애국하는 길이요 애족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위원 여러분!
지금까지 팽성에서는 우리의 땅과 우리의 마을을 지키기 위한 촛불행사를 440여일 째 하루도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연로하신 분들인데다가 낮에는 힘든 농사일을 하시느라 피곤에 지친 몸이지만 매일 촛불행사장에 나오시는 주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들이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그 분들의 남은 여생이라도 편안히 농사지으면서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경찰의 폭력에 손가락이 부러지고 피멍이 들어도 아프다는 내색도 할 줄 모르는 순박한 농민들입니다. 더 이상 우리 주민들에게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민들은 강제로 쫓겨날 위태로운 운명에 놓여있으면서도, 보상금을 받아 한몫 챙겼다거나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저항한다는 터무니없는 선동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 주민들의 목숨과 우리 민족의 운명이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현명한 판단을 하시어 역사 앞에, 우리 민족 앞에 떳떳이 설 수 있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들이 운다’ 책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2. 주민들의 터전과 촛불을 밝히는 현장을 꼭 방문해 주십시오.
3.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가 어떠한 땅인지 사전에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위와 같이 요청하오니, 수용재결에 대한 판단을 내리시기 전에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5. 11. 15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위원장 김지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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