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는 서탄면에 소재한 K-55 미 7공군 기지와 팽성읍에 소재한 K-6 캠프 험프리 미 육군기지가 각각 시 위아래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용산기지이전과 미 2사단의 이전으로 인해 두 지역 모두 미군기지가 확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
특히, 서탄면은 확장이 마무리될 경우 기존 218만평에서 64만평이 증가, 전체 면 면적의 1/3을 미군기지가 차지할 예정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마을은 구장터로 불리는 신장 1동, 금각리, 황구지리 등이다. 기지 동편에 위치한 신장 1동은 평택 시내 외곽에 해당, 주로 도시 서민들이 세입자로 들어서 있으며 나머지 금각리, 황구지리는 기지 서편에 위치,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투쟁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김지태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팽성읍 주민들의 투쟁이다. 상대적으로 서탄면이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탄면 지역 일대 K-55 미 7공군 기지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기지 확장으로 인한 강제 이주에 불만이 없을까?
비행기 소음 피해 극심, 이주 자체를 완강히 거부하진 않아
실제로 서탄면 지역 주민들은 팽성읍 주민들과 달리 기지확장으로 인한 강제 이주 자체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동안 활주로를 이착륙하는 비행기들로 인한 소음, 진동 피해가 너무나 극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 계획과 달리 확장 예정지에 마을 자체가 포함된 것도 사실은 주민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다.
평택시가 2003년도에 외부 전문 용역을 통해 1년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K-55 지역 일대의 소음, 진동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당시 조사 결과 K-55 지역은 F-16, F-15, A-10 및 C-130이 주기종이었으며 1일 운항회수가 54-123회으로 집계됐다.
항공기 소음 측정 단위로는 웨클(WECPNL.Weighted Equivalent Continuous Perceived Noise Level.
가중평균소음)이 사용되는데 신장1동 구장터 3.0㎢의 경우 97.8웨클을 기록, 이주대책이 절실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서탄면 신용조 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은 지긋지긋한 것이다. 계속 진동, 소음 피해에 시달리다 보니 차라리 이주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훈련 중인 전투기가 이착륙할 때는 옆 사람과의 대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을 정도.
이러다 보니 그간 주민들은 고막파열, 고혈압, 소음성 난청, 아이들 경기, 가축 유산 등 막대한 피해를 입어 왔고, 이런 것들이 지가에도 영향을 미쳐 다른 지역에 비해 땅값이 낮게 평가돼 왔다.
정부의 이주대책 납득 어려워, 현 상태라면 이주 자체를 반대
그런데 지난 달 중순에 시도한 정부의 지장물 조사는 왜 반대했을까.
주민들이 원하는 최상의 방법은 마을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파 탄약고로 집단 이주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 대부분이 고령인 관계로 농사 외에 다른 생계 수단을 가질 수 없고, 타향살이에 대한 두려움과 요즘 세태에 자식들에게 의탁하기 곤란한 면도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내 놓은 각종 이주대책도 '빛 좋은 개살구'다.
황구지리에서 만난 김창선(71)씨는 "주민 80%가 70대 이상 노인인데 이들이 어디 가서 뭘 먹고 살겠나. 자식한테는 못 간다. 가끔 휴가 때 자식들 오면 며느리 눈치 보여서 더워서 웃통도 못 벗는데... 그리고 저리로 융자도 해 준다는데 노인들이 그 융자를 뭘로 갚겠나. 다 빛 좋은 개살구지"라며 정부 대책에 불만을 토로했다.
신용조 대책위원장은 정부와 알파 탄약고로 집단 이주하는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토지 교환 방식이 아닌, 매입 방식이라는데 있다. 황구지리, 금각리 일대는 극심한 소음으로 인해 인근 지역에 비해 현저히 땅값이 싼 반면 알파 탄약고는 땅 값이 비싸다.
이렇게 될 경우, 일부 주민들은 기존의 땅을 다 팔고 이주를 한다 해도 집 한채 건실히 마련하기 어렵게 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한 마을 주민은 "똥값 받아 가지고 거기(탄약고)서 땅 사는 것은 버겁다"라고 말했다.
더 심각한 것은 설령, 알파 탄약고로 집단 이주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미군으로부터 알파 탄약고를 반환 받는 시점이 2008년이라는 데 있다. 국방부는 당장 2005년까지 부지매입을 마치고 이주를 시켜야 하는데 이들을 머물게 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신용조 대책위원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교환 방식이며 정부로부터 이주 지역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는 것"이라고 전했다. 마을 주민들이 정부의 토지 조사를 거부한 것도 정부가 이주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예정된 일정만 진행시키고 곧바로 감정평가 후 보상해 버리면 주민들은 확실한 이주대책을 보장받지 못하고 '개털'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상덕 황구지리 이장은 "언제, 어디로 몇 평으로 이주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약속해야 정부의 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라며 선 보장 후 이주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정부의 보상이니 뭐니 하는데 사실상 우리가 받을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내 택시나 버스 등에 '토지보사법으로 보상, 특별법으로 한번 더 보상'이라는 문구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기지확장에 반대하는 여러 사람들이 한 평씩 구입해서 마련한 608평의 '평화의 논'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이 논은 기지확장 예정지 한 가운데 있는데다 그 목적이 기지확장 반대에 있어 정부의그 어떤 회유에도 끝까지 싸워줄 땅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