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게 끊어준 '백지수표' 공개되다
용산기지 이행합의서(IA) 입수... 위헌논란 거세질 듯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태경(gauzari) 기자
▲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한 포괄협정(UA. 왼쪽), 이행합의서(IA). 정부는 UA만 국회 비준을 받을 계획이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
용산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가서명을 하고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협정안(포괄협정. UA)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합의서안(이행합의서. IA)을 15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했다. 이날 오전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에 의해 UA는 공개됐으나 IA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었다.
UA의 정확한 명칭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간의 미합중국 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안'이고 IA는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미합중국 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의 이행을 위한 합의권고에 관한 합의서한'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 문서들은 그동안 용산미군기지에 대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등 시민단체와 법률 전문가들이 "미국에게 백지수표를 끊어줬다"는 비판이 근거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 보고'에서 지적했던 사항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정부는 14일 차관회의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오는 19일 국무회의에서 이를 통과시킬 계획이다.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해 추상적인 원칙을 언급한 UA는 국회 비준을 받을 계획이다. 그러나 기지이전과 관련한 세부절차와 조건을 규정한 IA는 국회 비준없이 법적 효력을 발생시킬 계획이다.
비용 총액도 없이 전액 한국 부담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UA의 2조4항은 "대한민국은 토지·시설 및 이사용역을 제공하며, 이전과 직접 관련된 그 밖의 비용(other expenses)을 부담한다"로 되어있다. 그런데 협정서 그 어디에도 기지이전 비용 총액이 얼마나 될지 전혀 언급이 없다.
용산기지 이전 협정서는 쉽게 말하면 건축계약서다. A가 B에게 집을 지어주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하면서 비용 총액도 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면 A가 B의 아파트를 사겠다고 계약서를 쓰면서 "당신이 부르는대로 집 값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에 대해 40~50억달러가 들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는 지난 2002년 11월 한국 쪽 실무자가 '초기 마스터플랜'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산한 것에 불과할 뿐 미국은 이에 동의를 표한 적이 없다. 현재 정부의 정확한 입장은 "내년 말 정식 마스터플랜이 나와봐야 정확한 비용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 독일 프랑크프루트의 라인마인 미 공군기지를 람슈타인과 슈팡달렘으로 이전할 때 체결한 미국과 독일 사이의 협정서에는 총액이 최대 7억2780만 마르크(약 5230억원)로 명시되어 있다. 또 이 협정서 2조5항에는 "건축비나 기타 비용의 상승 때문에 재원이 충분치않으면 건설 사업의 규모를 수정하거나 주 유럽 미 공군의 기준에 따라서 사업 수를 줄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용산기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미 형성되어있다"며 "일단 이런 합의를 문서화한 뒤 땅의 위치와 규모가 정해져야 마스터 플랜을 세울 수 있고 그래야 총 비용이 나온다"고 설명하고있다.
외교부의 다른 관계자는 "예를들어 총액이 40억달러를 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규정하면 미국이 어떻게든지 이 돈을 다 쓰려고 할 것"이라는 군색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총 비용이 현재 예상을 크게 웃돌 경우 용산기지 이전에 동의할 국민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93년에 95억달러... 지금은?
반환받은 용산기지에는 아파트?
용산기지 이전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국방부는 기존 국방비용에서는 단 한푼도 내놓을 수 없다는 태도다. 결국 정부에서는 반환받은 용산 기지 부지 가운데 30만평 정도를 개발해 비용을 충당할 계획임을 흘리고있다.
그러나 일단 서울시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쳐야한다. 또 용산 기지터 개발은 행정수도 이전 계획과는 모순된다.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기위해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면서 용산 땅에 부동산 투기붐을 일으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않기 때문이다.
한편 용산기지 대체부지로 평택에 제공되는 토지 규모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있다. UA 제4조3항에는 "용산기지이전의 부지소요는 52만평/425에이커 벙위 이내이어야한다"며 "합중국에 공여되는 토지의 정확한 규모와 경계는 소파합동위원회가 결정한다"고 되어있다.
정부는 "기존 용산기지가 점유하고 있는 부지는 118만평인데 평택에 제공하는 부지는 52만평"이라며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미 2사단의 이전을 위한 대체부지 349만평이 제공되는데 현재 정부는 지적도를 전혀공개하지 않고 있다. 나중에 소파합동위를 통해 부지를 전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988년 노태우 정권 당시 추진되었던 용산기지 이전이 1993년 김영삼 정권 초기 중단된 것도 비용문제 때문이었다. 즉 애초 17억달러로 추산됐던 용산기지 이전비용이 93년 9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자 당시 정권이 포기했던 것이다.
90년 용산기지이전과 관련해 한·미 사이에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이 문서들은 용산기지의 '대체시설'을 지어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기존 시설을 그대로 옮겨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UA 2조10항은 "용산기지 이전의 결과로 연합작전능력, 전투준비태세, 삶의 질 및 합중국 군대 인원에 대한 지원이 유지되거나 제고(향상)되도록 보장한다"고 규정했다. 즉 기존 용산기지보다 훨씬 더 좋은 시설을 지어줘야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동북아기동군으로 변화하는 주한 미군의 '임무와 기능'에 맞게 시설을 지어줘야한다는 규정까지 들어있다.
이 때문에 지난 90년 합의서에는 아예없던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체계)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하도록 되어있다.
UA 제5조3항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설에서 지휘·통제·통신·컴퓨터 및 정보체계의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유엔사·연합사 및 주한미군사의 지휘·통제·통신·컴퓨터 및 정보체계의 기존 장비를 이전한다. 특히 장비가 재사용이 불가능하거나 이전이 교체보다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그 장비는 교체될 것이다. 장비의 교체를 위한 대한민국의 부담은 미화 9백만불을 초과할 수 없다."
정부는 "C4I 이전비용만으로 수조원이 들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근거없다"며 "교체비용을 900만 달러로 못박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UA에는 C4I의 기반시설제공, 이전비, 교체비를 언급하고 있는 900만달러 한도라는 것은 교체비에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반시설'이라는게 선만 깔아주는 것을 의미하는지 다른 장비까지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국회 위에 군림하는 소파합동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소파합동위가 국회의 기능을 사실상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UA 제3조1항에는 용산기지 이전을 위한 특별분과위(ad hoc subcommitte)를 둔다고만 규정했다. 그런데 이 특별분과의의 구체적인 권한은 국회 비준이 필요없는 IA의 제2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있다.
"용산기지이전계획 제3조 제1항 및 제6조에 따라 용산기지이전계획을 위한 특별분과위원회(용산기지이전계획 특별분과위원회)는 양 당사국이 주한미군지위협정합동위원회를 통하여 참조문건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세부절차와 조건을 규정하는 합의권고를 개발한다."
즉 용산기지이전과 관련한 세부절차와 조건을 모두 소파합동위에서 결정하도록 권능을 부여했다. 이 특별분과위의 한국 쪽 대표는 대령급 인물이고 미국 역시 대령급 인물이다. 그 상위인 소파합동위의 한국 쪽 대표는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미국 쪽 대표는 주한미 부사령관이다.
소파합동위는 그동안 한미관계의 불평등의 원조라는 평가를 받는 기구였다. 소파합동위에서 논의되거나 결정된 사항은 외부에 공개할 의무도 없다.
▲ 독일 라인마인 미 공군기지 이전 협정서의 한 부속문서. 사진은 반환할 기지의 부지도면.
ⓒ2004 .
조약 발효되면 국내법과 같은 효력가져
이에 대해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을 위한 비용은 결국 국회의 동의를 받아 타다써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비용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UA 2조7항에 "이 협정의 이행은 양 당사국 각자의 국내법에 따라 이 목적을 위하여 승인되고 배정된 자금의 가용여부에 따른다"고 규정되어있다. 이게 중요한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예를들어 지금 추산하는 40억~50억달러 이상을 훨씬 초과할 경우 국민여론 때문이라도 국회가 비용을 승인할 수 없다"며 "그러면 기지 이전은 중단되는 것"이라고까지 설명했다.
그러나 헌법 제6조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있다. 따라서 UA가 국회비준을 받는 순간 이 것과 IA는 국내법이 된다.
지난달 23일 열린 '용산기지 이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간담회에서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은 "조약은 국회동의를 거치는 순간 국내법적, 국제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조약 내용에 대한 성실한 이행은 국가간의 신뢰가 달려있는 문제"라며 "국회 통제로 조약에서 정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순전히 우리 내부 사정에 불과하고 현실적으로 이를 상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회 동의 위한 최소한의 요건도 못갖춰"
또 이번 협정서에 대해서는 국회 비준을 받기위한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도 강하다. UA 2조4항은 "대한민국은 토지·시설 및 이사용역을 제공하며, 이전과 직접 관련된 그 밖의 비용(other expenses)을 부담한다"로 되어있다.
그런데 토지, 시설, 이사용역, 기타비용의 구체적 항목은 앞으로 한미 사이에 체결될 기술양해각서(E-MOU)와 종합시설계획서(마스터플랜. MP)가 만들어져야 알 수 있다. 이후 구체적인 비용 산정이 가능하다.
예를들어 병원을 지어준다고 할 때 단지 콘크리트 건물만 제공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가의 의료장비까지 한국이 부담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따라서 지금의 협정서는 아예 국회 동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E-MOU와 마스터플랜은 나중에 다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UA와 IA에 그 어디에도 이런 규정은 없다.
독일 라인마인기지 이전 협정은 본문 뿐만 아니라 설계와 건설의 세부 항목별 비용과 분기별 건설계획이 들어있다. 또 부록 문서에는 반환되는 4개의 부지 도면, 최종반환 시한 이전에 반환되는 기지 사용과 관련된 전제와 조건들, 36개 세부 항목별로 구체적인 건설계획, 항목별 소요 경비 및 완공시기, 재정계획, 설계 및 건설 시간표, 라인마인 기지 환경복구 관련표 등이 있다.
'validate'란 용어에 거부권이 있나?
UA 2조4항은 "이전의 시행을 위한 모든 시설·용역 및 비용은 양 당사국에 의하여 유효성이 확인되고, 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가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지급될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영어 원문: "All facilities, services, and expenses incurred in implementing the relocation will be validated by the Paerties, and paid using procedures to be established by the SOFA Joint Committee")
여기서 'validate'란 단어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교부는 이 용어를 "유효성이 인정되고"라며 번역하면서 한국이 거부할 경우 비용집행이 되지 않을 권리, 즉 거부권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validate란 용어에는 거부권이 있다고 해석하기는 곤란하다, 정확히 하려면 approve라는 단어를 써야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협상 결과보고'라는 문건은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validation이란 표현에 대해 미국 쪽 수석 변호사 ○○○가 의미의 모호함을 지적했다. 그 정확한 의미를 질문하자 ○○○는 웃으며 모호성을 인정하였으나, 한국 국방부, 북미국측에서는 validation이 거부권(veto power)가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설명에 대해서는 이를 부인함."
수조원 날릴 미군 송유관 반환의 재판될 수도
최근 미군이 운용하다가 한국에 반환한 포항~의정부 간 송유관 450여㎞ 구간의 오염 복구 및 치유 비용이 최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어 파문이 일었다. 미군이 반환하는 기지 역시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외교부는 IA에 환경치유조항을 신설했다며 큰 성과로 꼽았다. IA의 제1조 참조 항목에는 '2003년 5월30일 소파합동위에 의해 승인된 환경정보 고유및 접근절차부속서 A(미군반환, 공여지환경조사와 오염치유 협의를 위한 절차합의서)'가 언급되어있다. 이 문서가 미군의 환경치유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파합동위 문서는 "널리 알려진 급박하고 중대한 인간건강에 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환경오염이 있으면 미국이 자신의 비용부담으로 치유한다"고 되어있을 뿐이다. 당장 눈에 보이고 사람이 쓰러질 정도의 심각한 환경오염이 확인되어야 미군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더구나 환경치유는 오직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행해지도록 권고되어 있을 뿐이다.
오염치유의 수준과 기한이 정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문건의 법적 구속력도 없다. 순전히 미국의 정치적 선의만 기대해야한다.
90년 각서들 과연 폐기했나?
90년 MOU와 MOA는 한국이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전액부담한다고 되어있으나 국회 동의를 받지않았다. 따라서 위헌 문건이다. 현재 IA 2조 2항은 "소파합동위에서 만드는 합의권고와 UA로 IA의 참조항목에 있는 90년 MOU와 MOA를 대체한다(supersede)"고 규정되어 있다.
외교부는 "이로써 위헌논란이 있던 90년 합의서들은 효력을 상실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들은 외교부의 주장을 별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일단 미국에서는 91년 소파합동위 문서부터가 진짜 외교적 효력이 있는 문서로 생각하고 있다. 소파 합동위 문서는 위헌논란이 있던 MOU와 MOA가 법적 효력이 있다고 지난 91년 당시 반기문 미주국장(현 외교부장관)이 확인해 준 문서다. 진짜 90년 MOU와 MOA를 대체하려면 당연히 91년 문서도 같이 대체한다고 언급했어야했다. 그런데 91년 소파합동위 문서는 싹 빠져있다.
또 "대체한다(supersede)"는 표현은 대체의 대상이 되는 문서가 적법·유효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는 반박도있다. 예를들어 수정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수정계약서의 체결로써 원계약서를 대체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으로 생각하면 위의 표현들은 오히려 90년 각서들에 합법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며 만약 UA와 IA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90년 문서를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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