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지난 해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과 LPP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을 등에 업고 올해 안에 평택 미군기지확장 예정지에 대한 부지매입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힌 것에 맞서 주민들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이들 사이의 골 깊은 대립이 예고되고 있다.
2008년까지 기지이전을 마무리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부지매입 시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입장. 정부는 일단, 협의 매수를 한다는 원칙 하에 주민설명회와 물건조사, 감정 평가 등을 거쳐 올해 안에 부지 매입을 마무리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협의 매수는 비행기 소음과 환경오염 등으로 오래전부터 이주를 바라고 있던 서탄면(K-55 기지, 공군 비행장)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주민들 선에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55 기지 확장은 전체 349만평의 확장 예정지 가운데 64만평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285만평은 K-6 기지(캠프 험프리)를 확장하는데 들어되는데, 도두리, 대추리, 내리, 동창리 등 이 지역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장단을 중심으로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를 꾸려,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왔다.
정부는 공여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가구당 1500만원의 ‘이주정착특별지원금’과 4인기준 최대 1000만원의 ‘생활안정특별지원금’ 등을 통해 주민들을 설득해 나갈 계획이지만 팽성읍 주민들은 일체의 보상도 거부, "단 한평의 땅도 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국방부는 아직까지 직접적인 시인은 하진 않지만 강제매입까지 고려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협의 매수가 실패할 경우 강제매입에 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가정을 갖고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일단 협의 매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하면서도 끝내 강제매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천혜의 농사 짓기 좋은 땅을 미군기지로 만드는 것은 국가적 손해
팽성읍 주민들이 오랜 싸움에도 불구하고 투쟁동력을 잃지 않는 요인으로는 대책위에 대한 신뢰와 매일 저녁 진행되는 촛불집회 등을 꼽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금지옥엽같은 천혜의 옥토를 두고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릴 수 없기 때문이다.
팽성읍 일대는 80% 이상이 농사를 짓는 이들이며 주민들은 아산만을 막아 맨주먹으로 간석지를 옥토로 바꿔 전국에서 농사 짓기 가장 좋은 곳으로 일궜 놓았다. 따라서 땅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은 각별하다.
"대한민국에서 여기보다 농사 짓기 좋은 땅은 없어. 여기는 1,500평에 쌀 44가마가 나는데 강원도나 경상도 같은 데서는 3천평에도 그 정도가 날까말까 해"
"또 밥맛이 좋기로도 유명해서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없어 못 팔 지경이다. 특히 좋은 쌀은 기름이 많아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이천, 용인 등 이름있는 쌀들도 다 여기서 사가서 섞어 판다"
도두 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동네 어른들은 한결같이 땅 자랑을 늘어 놓으며 "이런 땅을 미군 기지로 만드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굉장한 손해"라고 성토했다.
따라서, 정부가 이들에게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다른 지역에 대체토지(대토)를 알선해 준다 해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신청자에 한해 서산 간척지에 대토를 마련해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이를 다시 옥토로 만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상 받는다 해도 그 돈 갖고 아들 며느리 찾아가면 반기겠나"
또한, 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들은 주민들에 대한 보상금을 올려주고 적당히 시간을 끌면 결국 주민들도 하나 둘 포기하지 않겠냐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평생 농사만 짓고 이미 7,80대에 이를 정도로 고령화 된 이들이 보상액을 받고 새로운 생계 수단을 갖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 이들은 마을을 떠나면 어쩔 수 없이 자식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노인들은 부모 모시기 싫어하는 요즘 세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요즘은 부모 자식 간에 같이 살다가도 따로 사는 세상인데, 그 어느 딸자식이 부모 오는 것을 반기겠나. 그리고 도시로 나가면 그것은 바로 징역살여. 여기서야 이렇게라도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함께 해 먹고 놀지"
"아들이 도시에 나가 돈이나 잘 벌고 번듯하게 살면 그나마 다행인디, 지 하나도 힘들어 하는디 어떻게 가나. 그러니께 우리들은 여기서 그냥 죽이되든 밥이되든 내 나름대로 농사짓고 살겠다 이거여"
"그 보상 받아봐야 이사하는데 여기저기 쓰게 되면 얼마나 남겠나. 그것 가져간다 해서 아들 며느리가 받겠나"
그 어떤 물질적 보상이라도 생존의 벼랑에 몰린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것은 비교적 젊은 층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두 1리 부녀회장은 "아버님이 고생해서 일군 땅을 대를 이어 농사를 짓겠다고 남편과 함께 내려왔다. 그리고 아무 걱정없이 지금까지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설사 보상을 받는다 해도 잘 활용하지 못해 망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따라서, 김지태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읍대책위원장이 올해 안에 부지매입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국방부의 발표에 대해 "국방부는 일단 발표하면 주민들의 투쟁 의지가 꺽일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책위의 다른 한 관계자는 "국방부가 언론플레이를 통한 주민 설득작업 이미지를 최대한 홍보하고 토지에 대한 애착이나 생존권 위협이 덜한 부재지주들부터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 같다"라며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함을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