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7ㆍ10 미군기지 반대 모임에 대한 경찰만행을 보고
7월 10일 평택에서 있었던 미군기지 반대 평화대행진에 참석하기위해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젊은이들과 함께 전세 버스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날씨는 구름만 잔뜩 끼어있을 뿐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대추리 초등학교 교정에 마련돼 있는 대회장에는 이미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대회예정시각인 2시가 될 때 까지는 물론, 대회가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전국의 각계 애국단체들이 몰려들어 정확한 수자는 셀 수 없었으나 약 1만명 내지 1만2천 명 정도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모였었다.
그래서 대회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으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여닐곱 아니면 여덟아홉 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어린애들의 앙증스럽기까지 한 미군증오 노래와, 비록 얼굴에는 햇볕에 그을린 주름들이 깊이 패어져있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가업과 고향 땅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응고돼 있는 듯한 주민들의 표정들, 그리고 멀리 제주도에서 해군기지 설치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분들이 참여해 외치대던 반전반미 호소 등은 참으로 감동과 함께 의분이 일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또 독도는 우리 땅이란 곡에 맞춘 가사로 평택은 우리 땅이란 것을 합창할 때는 눈물마저 쏟아질 것 같았다가 엄청나게(4,5m~ 6~7m 정도) 큰 성조기가 발기발기 찢겨지는 것을 볼 땐 아주 후련하기도 했다.
교정에서의 대회를 마치고 미군기지를 에워싸는 평화적인 인간 띠 잇기를 하려 교정을 나오는데 그 때부터 미군기지 주변을 에워싼 담벼락과 그 바깥에 또 쳐놓은 철조망만 해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인데도 수십 대의 경찰버스로 꽉 막아놓고선 그 버스 앞쪽에 1.5m 정도나 되는 긴 곤봉과 방패를 든 전경들을 3겹 네 겹으로 세워놓아 그야말로 바늘조차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서도 평화적인 깃발과 만장만 들었을 뿐(그나마도 일부만) 그 어떤 흉기도 들지 않고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참가자 들을 향해 느닷없이 물대포를 쏘며 참가자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자는 현장책임자로 보이는 듯한 경감(무궁화 2개)에게 왜 평화적인 시위를 방해하며 시비를 거느냐!! 누가 이러라고 시켰느냐.!! 보다시피 우린 아무런 위험물이나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미국놈들에게 우리의 뜻을 알리고 평화적으로 끝내려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렇듯 과잉진압의 도마저 넘어 무슨 원수처럼 대하느냐!! 이런 것을 보고 미국 놈들이 우릴 어떻게 보겠느냐!! 창피하지도 않나!! 도대체 너희는 미국 놈들 종이냐 한국 경찰이냐!! 이렇게 않으면 마찰 없이 오히려 더 빨리 평화적으로 끝나게 될 일을 왜 이렇듯 살벌하게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며 호통 쳤지만 그는 자신의 재량으로 할 수 없이 오직 명령에만 따라야 하는 자신의 고충도 헤아려 달라는 넋두리만 늘여놓았다.
그러는 사이 벌써 한쪽에선 경찰봉에 얻어맞아 부상자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워낙 범위가 넓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현장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달려가 보니 참가동료들이 한쪽에 메어다 땅바닥에 누여놓고 시뻘건 피가 마구 흐르는 머리를 깜싸 주고만 있을 뿐 엠브란스를 불렀는데도 차가 막혀 못 온다며 모두가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안 현지 주민이 자신의 차를 끌고나와 병원으로 싣고 갔다. 그런 와중에서도 현장 총지휘자(경찰들을 확 밀치고 언덕바지에 올라가 멀리서 보게 돼 잘 알 수는 없었으나 무궁화가 너덧 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경찰서장 같은 자였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음)는 계속 밀어붙이라고 큰소리로 독려할 뿐 아니라 잘했다 잘했어 아주 썩 잘했어, 8중대는 좌로! 3중대는 우로! 하다간 밀어붙이지 않고 뭘 하고 있나.!! 밀리지 말고 밀어붙여!! 교육받은 대로 해!! 상대의 상체를 찍어!! 그래 계속 밀어부쳐!! 잘했어! 잘했어! 하는 말들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다. 워낙 성능이 좋은 마이크를 동원해서인지 아주 큰 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이는 나 혼자만이 들은 게 아니고 참가자 전원이 모두 똑똑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의 이름도 성도 모르는 처지이고 그 어떤 원수사이도 아니지만 내 옆에 있다면 그야말로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당장 요절을 내고 싶은 공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몰래 더러운 육두문자만 튀어나왔다. 그러나 허공에만 메아리칠 육두문자를 아무리 날린들 내 입만 더러워질 뿐 아무소용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분노가 치밀어 땅이라도 치며 통곡하고도 싶었다. 그런 가운데도 하늘에선 느닷없이 미국 놈들의 전투기로 보이는 이름모를 거대한 비행기가 당장 폭탄이라도 퍼부을 것처럼 시위대 상공을 저공비행하면서 하늘이 꺼질 듯한 굉음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들의 명령대로 한국경찰이 시위대를 사정없이 다루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더더욱 독려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시위대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인지는 모르나 그런 비행기나 굉음자체에 분노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일거에 없애버리지 못하고 울분만 삭여야 하는 내 자신의 미약함만 확인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총지휘자의 밀어붙이라는 음성과 잘했다는 목소리는 더욱 악랄하게 계속되고 있었고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는 각 병원의 구급차들은 다급한 사이렌을 울리며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역대정권들이 미제의 괴뢰정권이냐 아니냐 라든가 또 국립경찰이란 이 나라 경찰이 미제의 종이냐 한국의 경찰이냐 하는 것을 따진다는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을 새삼 곰곰이 되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 총지휘자라는 자가 한 조각 민족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죄 없는 젊은이들이 서로 원수처럼 치고받게 하면서 피 흘리게 할 게 아니라 자기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같이 시위대열에 동참해 미제를 몰아내자며 그야말로 밀어붙여야 할 터인데 그런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측면마저도 전무했다. 그에게 만약 최소한의 인간성이나 민족감정이라도 있었다면 다음과 같이 했을 것이다.
“시위대 여러분! 저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만 시키는대로 직분에 충실해야만 저와 제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도 민족의 일원으로서 미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죄악들을 생각하면 당장 몰아내야 한다는 민족감정은 여러분과 똑같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여기서 여러분과 대치하고 있는 것은 부당한 명령인 줄 알면서도 현실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저의 옹졸함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그릇이 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오니 이 못난 저의 고충도 좀 헤아려주시는 아량을 베푸시면서 또한 전경들이나 시위대 젊은이들이나 모두 다음세대를 이끌어 갈 주역들이기에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끝까지 평화적인 시위를 하신다면 저 역시 무리하지 않고 여러분의 뜻을 가감없이 상부에 그대로 보고하면서 되도록이면 여러분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고 솔직한 자기성찰과 겸손이 담긴 진지한 자세로 나왔다면 설령 어떤 흉기를 지니고 폭력적인 방법을 구사하려 계획했었다 하더라도 늦봄에 내린 눈처럼 어느새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시위자들의 뜻이 관철되게만 해 준다면 그 인품에 오히려 감동돼 이 나라 어느 곳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든 몰표가 쏟아져 국민적 추앙을 받게 될 참된 국회의원도 너끈히 될 터인데 어찌 그리 일신의 영달과 처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적 탐욕에만 빠져 87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도록 무조건 밀어붙이라는 반민족적 만행으로 일관했으며 그러고서도 자신의 이름이 역사의 살생부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 두렵지도 않는지 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