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똘레랑스 차이 혹은 다름
※ 부제 : 「평택 미군기지 이전 논란 - 뿌리 뽑히는 사람들」
※ 진행 : 손석춘 (한겨레신문 비상임논설위원)
※ 연출 : 김영상 PD
※ 작가 : 고혜미 / 선우일영
※ 방송일시 : 2006년 2월 9일(목) 밤 11시 5분
■ 기획의도
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예정된 평택 대추리 마을.
이 곳엔 집집마다 계고장이 붙어있다.
‘국가의 소유이니 불법 점유하고 사용하는 이에게 2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지난 12월 법원 공탁을 통해 토지를 강제 매수당한 이 마을은 법적으로 국방부 소유가 됐고, 주민들의 일상적인 모든 행위가 이제 불법이 됐다.
그런 이곳에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들, 문화예술인들 등의 이주민들이 찾아왔고 대추리 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협의매수를 하고 떠난 주민들의 빈 집에는 다시 불이 켜지고 훈훈한 온기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한평생 일군 고향 땅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사짓고 사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 되어버린 사람들...
『똘레랑스 - 차이 혹은 다름』에서는 국익과 안보를 위해 삶의 뿌리가 뽑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 50년 전에도 나가라더니...
평택시 팽성읍에는 대추리가 두 곳이다.
50여 년 전 주민들이 살던 대추리는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행정지역에서 사라졌다.
주민들은 쫓겨 나오면서 ‘대추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러나 50여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대추리’라는 이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미군 캠프 험프리스 기지 안 활주로 대추리 141번지가 그의 고향인 김석경(78) 할아버지.
1952년, 그가 24세 때 집이 헐렸고 집과 밭을 빼앗긴 대가로 받은 보상은 쌀 6가마니가 전부였다.
쫓겨난 주민들은 호미와 가래로 갯벌을 막아 농토를 일구었고, 할아버지는 지금의 대추리에 자신의 논을 갖게 됐다.
“ 싹이 커 올라오는 것 보면 신기하고 기분이 참 말할 수 없이 좋죠. 자식 같죠.
심어 놓으면 그대로 커 올라오고, 비료 주면 까매져서 쏙 쏙 올라오고... 참 예쁘죠.
힘들어도 크는 것 보면 재미가 났는데 요새는 논만 내려다보면 슬픈 생각만 들고... ”
이 논에서 자식들을 다 키우고 시집장가를 보냈지만 농대를 나와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아들(김지태.48.이장)이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도 반대했던 그였다.
미군기지를 막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들을 볼 때마다 김석경 할아버지는 가슴이 메인다.
#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비닐하우스에서는 저녁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촛불집회가 열린다.
하루라도 쉬면 동네 소식을 못 들을 걱정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회에 참석하는 김인순(72) 할머니.
수줍음이 많아 노인정에도 쉽게 못 가는 할머니에게 매일 저녁의 촛불집회 모임은 절실하다.
“ 여기 진짜 기가 막힌 동네야. 그 말을 다 어따 해요...
여기 떠나서는 못 살아요. 진짜예요. 다른 데는 안 갈 거예요.
어떻게 되면 모를까, 내가 진짜 죽을 생각을 다 했었어요. ”
마을에 대추초등학교가 세워진다고 했을 때도 4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빚을 얻어
쌀 한 말을 냈었다.
할머니가 홀로 키운 4남매는 소원대로 훌륭하게 커 주었고 지금은 결혼해서 타지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김인순 할머니는 자식들하고 타지에서 사는 것 보다 이 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 내 터전을 떠나 사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 내 집, 내 땅에 사는 게 저항이 돼버렸다
마을에 일이 생기면 집안 일은 젖혀놓더라도 나가며, 굳은 일 마다하지 않는 대추리의 장비 홍민의(49) 씨.
이번 팽성대책위원회 집행위원 활동을 하면서 그는 볏짚 사업도 정리했다.
장래를 내다보면 내 집, 내 땅, 내 마을을 지키는 것이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부인(이성례)이 큰 수술을 받았지만, 내색 한번 안하고 두 가지 일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러나 평생 살던 집을 폐허로 만들고 떠난 마을의 빈집을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 우리는 보상이고 뭐고 필요 없고 이대로 그냥 살게 놔두라는 거예요.
이대로 먹고살게 놔두면 없는 사람도 다 더불어서 먹고살거든요.
이웃이,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는 거 보면 속이 탑니다.
죽어도 우리가 지켜서 이겨낼 겁니다... ”
땅을 흥정의 대상으로 보는 이들에게 땅이 곧 삶인 농부들의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들이 자신의 땅을 지키고 사는 것은 이제 저항이며, ‘올해도 농사짓자’는 구호가 돼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