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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귀분님 (80세) 인터뷰
[편집자]
정귀분 할머니를 인터뷰한 3월 31일은 주민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최종숙 할머니 댁을 방문해 인터뷰를 마치고 막 나오면서 정 할머니를 만났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분이었는데, 최종숙 할머니의 “아, 사진 나오던디 여그. 허허.” 하는 말씀을 듣고 이내 생각이 났다. 정 할머니가 머리에 띠를 매고 주먹을 쭉 뻗으면서 뭔가 외치는 모습의 사진인데, 7월 10일 ‘평화대행진’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로 쓰이기도 했고, 촛불행사 200일째 때는 현장미술을 하는 <그림공장>이 무대배경 그림으로 그려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 당시에는 초면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우리에게 정 할머니는 “해나마나 안나오는 걸 뭐해.” 하며 불신을 보였다. 골목에서 한 20-30분 정도 얘기했을까? 따스한 봄볕을 쬐러 나온 다른 여성 주민분들도 끼어들어 “해면 뭐해.” 하고 거들면서 인터뷰[라기보다는 오히려 인터뷰시도]가 중단되곤 했다. 그렇게 정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주민들끼리의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어렵사리 진행됐다. 그래도 정 할머니가 인터뷰를 온전히 거부하지만은 않으셨다는 사실이 고맙다. 직전에 인터뷰를 마친 최 할머니가 이제는 당신이 궁금한 내용을 우리에게 묻기 시작하면서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보다는 정 할머니가 오히려 인터뷰를 주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딴 데 가보라면서도, 앉으시자며 내미는 스티로폼에 선뜻 앉아주셨다. 그 뒤 다시 찾아뵜더라면 기꺼이 더 속깊은 이야기를 해주셨을 테지만 찾아뵙지 못했다. 대신 여러 행사와 집회에서 늘 앞장서시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끝으로 덧붙일 말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할머니의 향수에 대해서다. 사실 나는 그 당시 미국과 관계에서 한국 대통령이 박정희였든 박길동이었든 다르게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노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똑같았고, 더구나 그것은 현재에 대한 것이지 않은가.
"해나마나, 해도 안나오는 걸 뭐 혀"
말을 잘 허는 사람이나 해야지, 나는 못 혀. 아유, 지금 모가지 아퍼 죽겄어. 해나마나. 해도 안나오는 걸 뭐 혀. 나오지도 안해.
= 아, 사진 나오던디 여그. 허허. [최종숙님]
저, 저 미군기지 나왔는디 옘병할 국방부서 나온다 그러기에. 나오지도 않고 맨날 그런 사람들만 내보내. 엠병할 당신들 와야 소용없어. 당신들부터 죽어. 그놈들 먼첨 나가서 왜 후방에 있지 뭐 때문에 나가서 있느냐고 뭐할라고 쬧겨나오냐고. 내가 지랠허고 그랬어도 하나도 안 나오대 뭐. 허기는 박대통령 같은 사람이 있어야, 그런 사람들이 나서야 되야. 에이구, 말도 마. 젠장할, 노대통령…. 진짜 박대통령이 해놨으니까 정말 밥 먹고 살만하고 이렇게 사는 거지. 그놈들이 했어야 하나 먹지도 못하고.
아이고 논바닥에, 내가 열네살부텀 꼬리두레, 물 푸는 거 있잖아 그거. 한 길 넘는 디서 아버지랑 이렇게 물 퍼서, 못자리 말러서, 물 퍼서 해느라고 죽을똥 쌌어도 뭐, 키우먼 뭐해. 요런 거. 키가 있어야지 모를 심어먹지. 굶어가지고 만날 송진도 뜯어다 깎아 해먹고, 쑥 뜯어먹었지, 복사꽃 훑어가지고 바가지에다 그거 훑어서 볶아서 먹었지. 그 보리쌀 그 고운 겨 나오는 거, 그것도 팔어서 해먹을라먼, 그것도 배불리 못먹어가지고. 이노무 거 진짜, 나는 진짜 고생 무지 헌 년여 이거. 배를 진짜 이럭하고 댕겼어. 진짜 굶어가메. 지금 그 생각허먼.
인자 좀 밥술 좀 먹겄다 허니까 이 지랠허니. 아우, 말로 다 못 혀. 일본놈들한티 그 압제받은 거하고, 그런 거 저런 거 말허래먼 말로 못혀. 그놈들한티도.
세상에 정월초하룻날 노는 때가 있나. 정월초하루날도 그냥 이놈의 가마 치느라고 지랠했지. 지금은 술이나 잘 받어먹고 해먹고나 허지. 술을 한잔 받아먹기를 해. 내가 쪼그매서 아버지랑 가마치니까, 우리집 그 술을 안먹으니까. 요런 왜 차례지낼래먼 병 있잖아. 이쁜 거. 호로병. 거기다가 한 병 있는디, 누가 줘서 인자. 할아버지가 봄술을 한잔씩은 딱 잡숫거든.
그걸 줬는디, 그것이 있으니 어떻게 혀. 슬그머니 가서. 아, 술 주셨나보다. 나도 여기다 속 치마 입고서, 여기다 [술병을] 차고 앉어서 가마를 쳤다니까. 그러니까 시집갈 때까지 술병 아무개라고 불렀잖아 그때. 허허.
아이고 나 그런 생각하고 그러면, 그놈들한테 진짜 압제받은 생각허고, 제우 인저 박대통령이 이럭해갖고 진짜 밥술 좀 먹고 이렇게 해게 생겨서. 생각하면 진짜. 생각을 하면은 말도 못 혀. 눈물밲에 안나와. 살만허니까 이 지랠허니. 우리들 죽는 건 문제가 아녀. 지금 요만헌 손자들 고것 때문에.
- 할머니 걱정은 안하시고요?
아이, 나는 다 살었이니까. 80인디 그까짓 것 뭐. 나는 다 살었으니까. 손자. 요런 거. 그게 걱정여. 아, 영감이라도 있고 아들도 있고 하면은 죽이 되나 밥이 되나 그것들 데리구서 이렇게 있는디, 지금 어디 가서 어떻게 사느냐 이거여.
-아이들 엄마 아빠 있을 거 아니에요.
엄마는 있지만 아빠는 없시유. 하늘나라로 먼저 갔유. 그러니까 더 걱정여. 있는 사람 같으먼 어디가 죽어도 한도 없고 눈을 감어도 괜찮은디. 이것들 때문에 지금 걱정이 태산 같여. 어디 가서 뭘 먹고 살어요.
"짓긴 뭘 지어, 개 콧구녕이나"
- 이 집에서 그러니까 손주들하고 며느리하고만 사시는 거에요?
예. 이 목구녘 풀칠허기도 힘든 세상인디 시방. 이 지랠허니. 세금은 세금대로 더 나오고. 솔직히 뭘 먹고 사냔 말여. 왜 나라에서 돈을 안주고 나라돈이루다가 그 미군놈 땅을 허느냐 이거여 왜. 좋은 땅을 왜 미군놈을 주느냐 이거여. 여기만 뺏기는 게 아녀. 뭐, 요기는 없어지는 겨 아주. 사그리 없어지는 겨 뭐. 아, 처음에 이리다 미군부대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대번 아 이놈들이 먼첨 후퇴해는구나. 한강다리 끊으먼은 못올 거 아녀. 거기서 그 자리서 뒤질 거 같으니까 이것들이 먼처 미리 나오는구나. 나 이렇게 머리 썼어. 대번 그 소리 듣고서. 아니나 달러? 허나마나 그 말이 그 말이지. 허나마나여. 다들 알 걸.
아이구. 밤에 자다 잠도 못자. 애들하고 집 이거 가지구선 어디 가서 집 한 채를 얻을 수가 있어, 뭐를 먹고 살어. 몇 푼 준대야, 가서 뭐 먹고 살어. 어디 직장을 댕길 수가 있어. 저희가 먹고살게 해줄 거 같으먼 몰르지만은. 아주 죽기생전. 그놈들이. 나라에서. 하여간 나라 막어먹을 놈들이지 뭐.
= 그래 지그들이 집을 진다는 거여? [최종숙님]
짓긴 뭘 지어, 개 콧구녕이나.
= 나는 그거를 알고 싶어요. [최종숙님]
- 집을요?
= 응. 사는 집. [최종숙님]
- 집을 지어주냐고요?
= 이. [최종숙님]
- 집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여기 보상금으로….
= 아하하하하. 그거, 나 평택만 나가도 이, 금싸래긴디 여기서 나가가지고 돈 받어가지고 가서 어디 가서 먹고, 어디 가 의지를 혀? [최종숙님]
못살아. 아-무리 생각을 해도 밤에 자다 잠이 안와 그냥. 눈물밲이 안나와. 어떻게 어디 가 사느냐고. 봐. 물새 내야지, 쓰레기값 나가야지, 안나가는 거 없어. 어디 가 어떻게 사냐 이거여. 나 같은 놈은 지끔 죽어도, 요런 것들, 그것 때미 걱정이지. 그것들 어디 가서 어떻게 살어.
-손주들이 몇 학년이에요?
그러게 자기가 대학교 들어갔는디 못 댕기고 있슈.
- 대학교 합격했는데 못 댕겨요?
예. 한해 댕기고 못 댕겨요.
- 손주가 몇이에요?
남매유.
- 돈이 없어서 그런 거에요?
돈도 없고. 뭐 지금, 아이구 걔들 그런 것 저런 것, 책값만 해도 옛날에 니미 책 한권에 돈10만원씩 가던 거, 지금 애들 대학교 아마 한권이 몇 십만 원 갈 걸?
-그러면은 돈은 어떻게 벌어요? 며느리가 버시는 거에요?
못 벌어요. 조금 댕기다가 못 댕기는 겨. 나이가 있고 허니까 어디 들어갈 디가 없잖어.
-할머니요?
할머니는, 나는 뭐 못 해는 거고.
- 며느리도….
그럼, 나이가 있으니까 못 댕기지.
- 며느님 나이가….
한 50 넘었지. 아유, 모가지 지끔 뻣뻣해가지고 죽겄어 그냥.
- 왜 목이 아프세요?
아, 인저 기운이 없으니까 점점 아픈 디만 자꾸 나오는 거여. 밤새도록 몸을 못 움직이겄어, 어떻게 된 게. 아이구. 굳었어 굳었어.
- 여기 좀 앉으실래요.
아유, 그러니 저러니 어디 딴 디 딴 디 얼릉얼릉 댕기셔. 우리는 어디를 갈까 나가볼까 하고….
-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아유, 나오는 거유 그냥.
- 노인정에요?
노인정에 지끔 사람 없슈. 점심들이나 먹어야 댕기긴 댕길 거유.
- 점심은 노인정에서 드시고요?
아니. 즈집 즈집에서.
- 고향이 어디세요?
사는 디가 고향이지 어디여?
- 태어난 곳요.
태어난 디는 저 아산만유. 여기서 얼마 안 돼유.
"우라지게, 으쓱대긴 드럽게 으쓱대대. 정치는 드럽게 해가면서"
-여기로 시집오신 건가요?
예. 하이구, 옛날 얘기 해나마나 해도 이거 뭐 하나 안 나오고. 노인정에 점심때나 가면 사람 많을 거유. 나 말주변 하-나 없었는디 지끔 욕도 잘하고. 허허. 욕도 잘해 진짜. 인제 악만 남어서 욕도 잘해. 호영할머니. 아니, 부야가 잔뜩 나는 디다 그냥 목도 아프고 하니까 그런 소릴 허니 그냥, 얼마나 저기햐.
-무슨 말씀 들으셨어요?
허어. 아니, 쓰레기 같은 거 저기다 누가 던져내뻐렸다고, 깡통 같은 거. 나는 쓰레기 그런 거 거기다 내뻐린 것도 돈품 들어간 것들 줏어다가 따로 갖다 쓰레기통에 넣는데 그러기에, 부야가 나길래, 욕바가지를 해버렸어. 그런 소리 들으먼 욕밖에 안 나오는 걸 뭐.
- 안 그랬었다면서 왜….
아, 이렇게 되니까 욕밲이 더 나와유? 사람이 냥.
-이렇게 되다니요?
사는 집, 사는 디를 뺏은대니까 욕밲이 더 나와유. 대통령만 욕해야 소용도 없는 거고. 나라가 어떻게 될라는지 이 지랠 허니.
- [다른 주민 두 분이 더 오시는 걸 보고] 안녕하세요?
= 후딱 지나가는 걸 뭐, 그림자 지나가디끼 지나가는 걸 뭘. 그까진 놈의 걸 뭘 노다지 찍어가고 얘기허라고 그래. 얘기해야 뭐해, 그까짓 놈의 걸. [다른 주민]
[주민들 네 분이서 날씨 얘기, 농사 얘기, 안부인사 등]
- 손주 하나는 뭐해요?
놀아요. 군인나갔으니까 놀아아죠.
- 할머니 자제분은 돌아가신 분 하나뿐이에요?
남매유.
- 딸은 딴 데 사세요?
어.
= 찍어만 가면 뭐 핼 거여? 대통령이 봐야지. [다른 주민]
우라지게, 으쓱대긴 드럽게 으쓱대대. 정치는 드럽게 해가면서. 정치도 개똥같이 허면서는 으쓱대긴 드럽게 으쓱대고 대녀. 걸음 걷는 거 봐 아주. 폼 잡고. 내 땅을 왜 남의 나라다 줄라고 지랠혀. 그게 정치 드럽게 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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